개인이 규범, 질서를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각자가  맺고 있는 유대관계 덕분입니다. 꽤 오래전 사회학이론인 사회유대이론인데  사회유대이론은 범행 잠재력이 있는 일반인들이 범죄를 억제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로 부모나 친구 등의 중요한 사람과의 유대관계나 학교와 직장 등 중요한 사회제도와의 유대관계에 치명적인 해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비행청소년도 기존의 범죄이론과 달리 비행을 야기하는 가치관을 가진 소년으로 보지 않고 비행을 저지하는 규범 내지 유대가 결여된 소년으로 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2017년에 92세의 나이로 영면합니다.  바우먼의 책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는 2001년 초판이 나오고 몇 번의 수정을 고쳐서 최종판이 2013년에 나왔습니다.

이 책 출간뒤로  2010년대에 국내에서 바우만의 열풍이 불어서 그의 많은 저작들이 소개되었습니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가정, 학교, 직장 등 대표적인 유대관계망이 어떻게 흔들리고 소멸하는 지를 조명합니다. 제일 먼저가 가정이죠. 늘어나는 비혼인구와 저출산이 가족제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학교도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직장인 양성소가 된 대학 그리고 그 대학을 가기위해 공부하는 고등학교에서 사제간의 유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유대관계망을 가진 직장을 갖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대학교·대학원 졸업자 취업률이 65.1%로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상시 근로자 1000명 이상인 기업 취업자(7만4898명)으로  전년도(8만2837명)와 비교해 크게 줄어들기도 했고 취업대상자 48만 149명의 15.6%에 해당합니다.

대기업 취업도 안정된 직장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 비율도 15% 수준이니 직장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도 유효기간이 짧을 수 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더 하겠죠!  투게더와 장인의 저자 리차드 세넷에 의하면, 2000년에 첫 직장에 들어간 미국인은 평생 12〜15회나 이직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해체되고, 학교는 기능 교육만을 하고 직장은 직원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각자도생’의 사회라 합니다.

바우만은 이를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라 이름 붙인 것이죠

 

바우만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그의 대표작인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2000)에서 이미 유동성에 그 원인을 둔 바 있습니다.

단어뜻으로만 놓고 보면 액체가 적절한 표현이지만 액체와 유동성은 상실 붕괴 흔들림 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즉 개인의 자아실현과 노동, 공동체적 활동 등 삶의 많은 영역이 흔들리고 붕괴되어 개인이 상실된다는 진단으로 보아야겠죠. 그래서 액체의 반대말은 고체가 아니라 안정과 확실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바우만의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는 액체 근대(2000) 이후 유동하는 떠돌아 다니는 삶과 사랑 시간등으로 연결되는 근대 시리즈의 성찰과 맥을 같이 합니다.

부제가 참 슬픕니다.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나는 홀로 소멸한다’

우리의 불안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불신과 무관심도 우리가 만든 것은 압니다. 성적만을 위해 공부하고 돈만을 위해 일하고 그리고 물질적 소비로 위안받는 우리들은 식민지와 전쟁, 독재라는 불안정성의 중첩으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와 유대관계의 실종때문입니다. 50-60대는 그 대신 풍요라도 얻었지만 20-30대는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각자도생과 홀로 소멸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죠

 바우만은 ‘제대로 생각이 박힌 사람이라면 빈곤층의 처참한 삶을 보면서 여유로운 삶은 보장된 것이 아니고 오늘 성공했다고 내일 실패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게 당연하다(194쪽)’고 진단합니다.

부유세라기보다는 연대세인 것이고 기본소득이라기보다는 시민배당인 것이죠

십여년전 각하께서는 '노오력'을 이야기했지만 지금도 이런 체계적인 모순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개인의 부족함으로 돌린다면 정치도 사회도 필요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다시 사회유대이론을 들먹이자면 개인의 일탈행위 즉 범죄가 발생하는 이유가 눈치볼 것 없는 사회, 품위없는 사회, 천민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인데 누가 수사하는 지를 놓고 따지면서 염치 없는 큰 도둑들을 다 흘려버리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에게 공적영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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