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 한국전쟁에서 항공우주분야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부산에서 개교한 후 서울 용산으로 옮겼다가 현재의 수색캠퍼스로 교통부 산하의 국립대학으로 출발한 곳이 항공대학입니다

1970년대 국립 항공대학은 카이스트처럼 특별전형으로 뽑는 대학으로 학비 면제였고 1976년도 배치표 기준은 서울대 농대 고려대 한양대 의대보다 높았습니다. 당시는 연대 전자공학과가 한양대 의예보다 높았고 부산대 약대가 고대 한대 의대보다 높았습니다.

1979, 한진은 '동양의 MIT'로 키우겠다면서 한국항공대학을 인수하지만 인수 후 바로 지어주겠다던 신 강의동과 학생회관을 95년이 되어서야 지어준 사례처럼 열악한 시설과 재단의 무관심 그리고 서울이 아닌 수색이라는 점에서 커트라인이 계속 떨어집니다.

1994 수능은 MBC 드라마 '파일럿'이 방영되면서 항공공학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던 때라 서울대 인하대 건대등의 학과 순위가 상당히 높았지만 항공대는 과거처럼 높은 위치에 있지는 못하게 됩니다.

당시 수능은 1,2차로 나눠서 보았는 데 수석은 모두 서울과학고에서 나왔습니다.

ㅇ 윤건수 교수는 유일하게 서울대가 아닌 포항공대 입학을 선택했고 지금은 포항공대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입니다.

윤건수 교수  (사진출처 : 포스텍 홈페이지)
윤건수 교수  (사진출처 : 포스텍 홈페이지)

2014년 당시 항공대 총학생회 이름은 4383이었습니다. 전교생이 4383명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1987년까지는 입학정원이 300명이었는데 1988년에 580명이 되었고 87년 당시 여자 신입생은 6, 전교에 여학생이 20명이 안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집단자퇴사건이 일어났는 데 조양호 한진회장(정석학원이사장)이 인하대와 재단합병 방침을 밝힘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199711월 총학생회는 재단퇴진과 국립대 환원을 요구하고 1~3학년 학생 15백여명이 집단 자퇴서를 제출하고 수업에 불참하였습니다

당시 전교생은 2500명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후보는 항공대의 국립대 환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었습니다.

인하대 항공대 재단통합은 2013년에 이뤄졌고 재단지원이 인하대에 치우쳐져서 오히려 통합이 어렵다는 전망입니다.

항공대의 입결하락은 두 가지를 시사합니다.

현재의 전망은 전망에 불과하다는 것과 대학입학정원이 작은 학교는 위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공상과학소설속에서는 항공 우주분야의 위상이 높습니다. 그런 소설 속에서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미미하게 다뤄집니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메타버스 같은 것은 나오지 않죠

현실세계안에서의 이동에 소설은 주목했지만 현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면서 집에 있는 것이 다릅니다.

항공대와 단국대 교과전형의 수능최저학력은 같습니다. (자연계열 기준)
항공대와 단국대 교과전형의 수능최저학력은 같습니다. (자연계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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