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

입양아의 친부모를 찾아주는 좋은 일을 하시는 대표님을 만나고 왔다. 개인적인 인연을 맺어 오랜 신뢰가 쌓이다 보니 그들의 사연을 하나씩 열어보게 되셨다고 한다. 한 때는 입양에 대한 오명을 덮어쓸 만큼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는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아픈 사연 속에는 버리는 부모와 버림받은 자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사연 속에 뿌리 깊은 오해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은 곪은 상처를 껴안고 평생을 아파하는 삶이 있다.

나도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보육시설이 있다. 지난 겨울에 그 곳에서 입양으로 떠난 2명의 아이들을 보았다. 3살 정도 아기와 초등 고학년 아이. 두 명 모두 영화 속 주인공 처럼 행복한 가정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 어린 아가는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 품에 안겨 같은 방 친구들과 이별 인사를 할 때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는 친구들을 달래며 아이를 차에 태워 빨리 가라고 손인사로 보내며 눈물을 삼키던 원장님과 이모님 얼굴에 나의 가슴도 먹먹해져 눈물을 보탰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스스로가 입양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었다. 혼자만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된 아이는 같이 지내던 친구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않게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아있는 외로움을 알기 때문이었을 거다.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가질 수 있어 부럽다는 친구, 게임 실컷 할 수 있겠다고 부러워 하는 친구, 생일 파티에 꼭 초대하라는 친구 등 고개 끄덕이며 대답하는 모습에 쓰리는 가슴도 있다. 

따뜻한 가정으로 이사가는 그 마음에는 엄마와 아빠가 새로 들어와 앉게 되겠지. 그 아이들 마음에 떨어지지 않을 딱지에 오해가 덧붙여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누구나 처럼 소중하고 더 없이 사랑스럽게 이 세상에 초대받은 손님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이상은 마음에 상처가 더해지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나와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나의 주위에서 피어나면 왠지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해를 가리는 용도로만 색안경을 쓰는 것으로 하자.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비교하거나 차별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나를 버린 엄마, 아빠가 아니라 나를 태어나게 해 준 엄마, 아빠를 찾고 싶게 우리가 조금 만 더 마음의 온도를 높이면 좋겠다. 우리 대신 따뜻한 가정으로 아이들을 맞이해 주는 엄마, 아빠들에게 끊어지지 않는 응원으로 이웃사촌이 되기로 한다.

 

저작권자 © 괜찮은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