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갖고 본 시험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우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연령별 우울감 지수를 보면 10대에서 30대까지가 높게 나옵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은 받고 결과가 잘 나오는 경우가 적을 수 있으니 당연할 것입니다.

게다가 40대 이후는 좋은 일과 나쁜일이 교차해서 나오는 것을 터득하지만 10대 20대에는 조바심이 나지 나쁜 일이 끝나면 좋은 일이 온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고사로는 새옹지마이고 주역의 괘로는 비극태래 否極泰來 입니다

비극태래는  좋지 않은 일들이 지나고 나면 좋은 일이 온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누적됩니다. 누적되는 경험은 작은 만족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불만이나 불안감은 전보다 감소시킵니다. 신체적 위협이 다가오는 60대에서 오히려 우울감지수가 낮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 저는 풀이하고 싶습니다. 

어제 늦은 오후 집 앞의 스타벅스가 왠일로 조용해서 창가자리에 마주 앉은 우리부부는 참 행복했습니다. 생각해보면 5년전 10년전이라면 그렇게까지 고맙고 행복다하고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었습니다.

대단한 경치이겠습니까?  누적된 경험이 가져다 준 평안함이지요

우울감은 많이 피로해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쉰다는 것은 많이 쉰다는 것이 아니고 자주 쉰다는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대체로 5시간 이상 쉬어버리면 오히려 더 피곤해진다고 하고 아쉽게 쉬는 것 그리고 그런 경험을 여러번 하는 것이 피로해소에 도움이 되고 피로가 줄어들면 우울감도 개선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뇌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뇌가 좀 모자라서 생산적 활동때 취했던 자세를 쉴 때도 똑같이 취하면 쉬어도 쉬는 것이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공부할 때 자세 그대로 영화를 시청하면 영화보고나면 더 피곤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친구랑 만나서 수다떠는 것도 피곤하고 책상이나 소파에서 앉아서 영화보는 것도 피곤한 것입니다.  뇌가 영화와 인강 동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수업듣는 것과 친구랑 이야기 하는 것을 구분 못하는 것이죠

사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우울감이 해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울감을 더 쌓게 하는 경우도 있죠

아주 편한 사람과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 평소와는 다른 여유있는 심호흡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쉬는 데는 더 효과적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을 통한 얕은 호흡을 합니다.

호흡만 잘 해도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이야기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고 저절로 나오는 한숨도 일종의 방어기제인 것입니다.

얕은 호흡을 하니 가슴근육이 답답한 것이고 심호흡을 잘 하면 뇌에 산소를 공급해주니 마음에 안정이 생깁니다.

시험점수가 잘 안 나와서 참 우울한데 그 우울함이 부모에게 미안해서인가요?  나 자신에게 실망해서인가요?  아니면 앞으로 내 뜻대로 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때문인가요 ?  제대로 노력을 해보지 못한 후회때문인가요?

미안함 때문이라면 부모님은 지금은 실망했어도 시간이 흐르면 다 이해합니다.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면 제대로 노력을 해보지 못한 것 때문인가요?  아니면 제대로 노력을 했는 데도 도대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움 때문인가요?

노력을 정말 제대로 안 했다면  이번 기말에는 정말 많이 해봐야 되고 노력은 했는 데 성과가 안 나왔다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학교선생님 학원선생님 그리고 점수가 잘 나온 친구에게 제대로 진단을 받아야 합니다. 요령 부족이잖아요!

내 뜻대로 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때문이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공부 잘 해도  공부 못 해도 내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허다한데 이는집착과 욕심이 결정합니다. 공부를 잘 하면 바람이 언제 부는 지는 알지만 그 바람에 맞서야 되는 순간이 오면 좀 많이 힘들 것이다라는 것을 아는 데 그치는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데 즐겨라는 말은 사실 좀 엉뚱한 말입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데 그럴 수 없을 때는 언제 끝날지를 가늠해 보는 정도로 참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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