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읽으면 종종 책을 대출해갔던 사람들의 흔적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을때가 있다. 무언가 먹다 흘리거나 묻힌 자국, 다른 대출자들은 안중에 앖는듯 거침없이 그어놓은 밑줄, 미처 다 때지 못한 포스트잇, 조심스럽게 책의 한퀴퉁이에 적어놓은 흐릿한 메모등. 중고서적도 마찬가지다.

이런 흔적들을 마주할때 가끔책을 거쳐간 이들의 일상의 순간을 상상해보곤한다. 그러면 그 책은 더이상 아무 생명력이 없는 단순한 물질로서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물성을 이루게 된다.

물성 :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 물질의 전기적ㆍ자기적ㆍ광학적ㆍ역학적ㆍ열적 성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헌책방 기담 수집가> 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설레였던 것은 아마도 헌책의 물성,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누군가의 삶의 한순간에 잠시 머물렀던 물질이 갖게된 그 어떤 기운 때문이었으리라.
이 책의 저자 윤성근은 어린시절부터 동네 헌책방의 최연소 단골로 책더미 속에서 신기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을 좋아했다. 저자는 현재 헌책방을 운영하며 여기서 책과 사람에 얽힌 기묘한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 책은 저자가 절판된 책을 찾아주고 수수료로 돈대신 책에 얽힌 사연을 받아 엮어낸 책이다. 
저자는 절판된 책을 찾는 이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들 중 스물 아홉편을 추려 사랑, 가족, 기담, 인생이라는 카타고리로 분류했다.책에 실린 사연들은 하나같이 흥미롭고 기묘하며 감동적이다. 저자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작가답게 자신이 모은 이야기들의 사실성이 왜곡되지 않고,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은채 전달되도록 애정과 노력을 담았을 것이다.  
그렇게 <헌책방 기담 수집가>는 어딘가에서 생의 과정을 묵묵히 지켜내던 나무가 책의 주요 자원인 종이가 되어 그안에 알수 없는 누군가의 삶의 순간들, 응축된 감정과 사연을 꼭 감싸안고 독자의 손으로 들어가 다양한 정체성을 쌓아가며 책의 물성을 획득한다.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좀 부끄러운 고백인데, 책이라는 물건에는 마법이 깃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머리로는 부정하지만, 서가 사이를 걷다가 그 분명한 힘을 피부로 느낀다. 대형서점보다는 도서관에서, 그보다는 작은 서점에서, 그리고 헌책방에서 가장 강력하게.전자책보다는 종이책에, 그중에서도 소장자의 사랑을 오래 받은 사연 많은 책에 그 마력이 더 깊이 담기는 것 같다." -장강명(소설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추천사 中-

 

우리는 왜 근사한 헌 책방이 없을까?  --우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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