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의 진실

어느 새 초여름이 훌쩍 다가왔다. 세차하고 신호등을 지나자마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6월 장마를 예고하는 듯 했다. 이제 장마비와 같이 아이들 기말고사가 기다리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알게모르게 긴장하는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다. 수업을 하는 학원 선생님 근심은 콘크리트 같이 무겁기만하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를 쳐다보는 엄마 가슴은 벙어리 냉가슴을 넘어 샌드백이 되어가고 있다. 해맑은 우리 아이들만 머리와 가슴이 따로 움직이는 마술에 걸려 있어 시험이 끝난 후를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야속하기가 말할 수 없다.

아이들 진로는 부모에게 큰고민이다. 당장 그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목표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이 답답하기만 하다. 뽑기로 정해줄 수도 없고 부모 마음대로 끌어당길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가끔 드물게 누구네 아이는 진로를 정했다는 말이라도 들으면 출발이 늦어 모든 것에서 뒤쳐지는 것이 아닐 지 불안감에 입맛도 없고 잠도 오지 않는다. 핸드폰을 들고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에 쏟아지려는 입 속의 말을 주먹으로 막고 돌아서기를 수 백번 반복하는 처지가 처량맞기만 하다. 

'부모의 불안감은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부모는 아이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뜨겁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가 갖는 행복의 기준은 현실과 꿈 속, 경계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기분이다. 내 아이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면서 그 기준이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며 정해지고 있다.  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뒤쳐지면 행복감이 제로에 가까워질 까 봐 걱정이 쌓여간다. 과연 수학의 정석을 중1에 끝내고 물화생지 과목을 한 번 둘러보는 것이 행복의 등급을 올리는 촉매제가 될까? 모의고사 1등급이 과연 행복을 약속해 줄 수 있는 걸까? 당연히 아니란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그런 하찮은 것에 떨리는 불안감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감정일까?

부모의 자존심이다. 말과 마음이 다른 '괜찮아'라는 단어에 숨어져 있는 굽히고 싶지않은 얄팍한 자존심이다. 솔직하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있는 그 마음에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치지 못하는 끝까지 보이고 싶지 않은 나 만의 자존심이다. 눈물로 호소하고 안타까움에 놓고 싶어도 마음대로 놓을 수 없는 불안감 속에 숨은 진심은 이렇게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장마를 기다리는 마음 속에는 젖는 것이 싫으면서도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맑게 개이는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흐림, 비, 바람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비가 내리는 것을 즐길 여유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습자지 처럼 얇게 스미는 반항이 하드보드지 꺾어 칼로 잘라내는 격정의 시간이 지나면 자아를 찾아 해야 할 것에 순응하는 시간이 온다. 그 시간에 돌아와 자리를 찾을 수 있게 기다려 주는 것도 부모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싫은 것을 이겨내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려면 참을성의 필요함을 느끼고 몇 번의 실패로 한 번은 참아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부모가 알려주는 것과 달리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도 스스로 손에 잡아봐야 그것이 떡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남 보다 못 살게 될까봐, 남 보다 가난할 까봐, 남 보다 행복하지 못할 까봐 두려워 하지 말자. 어른도 그 시간을 지내고 각각 나름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행복은 지갑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필요한 만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는 아직도 열심히 살고 있다.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남겨줄 것도 계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지갑의 굵기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존감을 맛보게 했으면 좋겠다. 행복은 선행하는 진도가 아니다. 좋은 학교가 행복을 선물하는 산타는 아니다. 진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안돼"라고 먼저 말하지 말고, "왜?"라고 물어봐 주자. "그게 필요해?"라고 되묻지 말고, "한 번 해 볼래?"라고 물어봐 주자. "네가 하고 싶다고 했다." 협박하듯 확인하지 말고, "힘들면 말 해."라고 여유를 주자. 마음 속 불안은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내일처럼 사랑하고 즐기며 오늘 하루를 허술하게 지내지 않고 나름 알차게 지내는 반복을 한다면 부모도 아이도 행복의 문을 같이 열 수 있다고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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