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고도성장의 비결은 교육열이 높아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을 하거나 성공하려는 열망이 많았던 덕분이다. 이 같은 인적자본이 장기적으로 공급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도성장할 수 있었다. 과거에 교육이 평등한 기회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과거의 교육과 인적자본 축적을 통해 성장동력을 찾는 성장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않는 게 심각한 문제다.

어느 정도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서 과거처럼 빨리 성장을 못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많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시장질서 자체가 불공정해도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은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빠른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부 질서를 공정하게 하지 않으면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극히 미미해진다. 내부 질서와 분배를 공정하게 만들고 정부가 안전망 역할을 하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중요한 시대가 됐다.

주병기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06~10) 를 거쳐 2010년 9월부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주병기교수는 미국 캔자스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와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 (06~10) 를 거쳐 2010년 9월부터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주병기 교수가 소셜코리아에 기고한 글 중 발췌했습니다.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주도, 시장주도로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행정부 수반이 경제정책 방향을 소개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이다. 전제와 결론의 연관성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사실에 반한다.

위기에 처할수록 복지와 사회안전망 그리고 국가와 공공부문의 위기관리 역량의 중요성이 커진다. 코로나19 위기 때도 그랬고 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의 체질을 시장주도로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있는 자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는 후진적 시장경제냐? 아니면 보편적 삶의 질을 높이는 민주적 시장경제냐? 전자의 현상유지는 안 된다.

 

부동산 관련 정책방향은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 완화, 분양가상한제 완화, 공급확대를 위한 인허가 관련 규제 완화 등이다. 빚내서 집 사라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빠른 금리인상이 확실시되는 시점, 그것도 과열된 부동산 자산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려는 시점에서 이런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정책이다.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 같은 단기 성과주의의 유혹인가? 서민 주거안정을 목표로 부동산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보유세 완화와 공정시장가액 비율 하향조정,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가업승계 특례의 대폭 확대(매출액 기준 1조 원까지 적용하고 사후관리 기간 축소) 등 대기업과 최상위 계층에 가장 큰 혜택을 주는 부자감세안이 눈에 띄는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감세의 합리적 근거도 찾아보기 힘들고 고물가-고금리 시대와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비한 대책으로도 볼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악화된 소득과 자산 불평등을 더욱 가중시키는 매우 부적절한 정책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부자증세를 강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부의 대물림,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역행한다.

노동시장 개혁 방향은 노동시간, 노동자의 건강, 산업재해 등에 규제의 유연성을 키우고 노사 간 자율적 합의를 존중한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에서는 경영자 책임을 완화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노동정책의 기본철학이 부재하고 마치 '규제혁파' 혹은 기업친화적 성장전략의 부속물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과로로 내몰지 않게 하고, 높은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최상위 과제이다. 경영활동 위축을 명분으로 타협해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근간을 설계하는 것이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이 막중한 영역이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이 교육도 왜곡

이런 기본적 규제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을 살릴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기업만이 생존하도록 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길이 선진 경제로 발전을 지속하는 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는 극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만 있을 뿐이다. 이런 시장에서 자신의 소질을 자유롭게 개발하여 창의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대학교육과 초중등교육 모두 비정상적인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교육개혁은 발표한 것처럼 대학 자율에 맡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임금, 복리후생, 산업안전 등에서 부문별 격차를 현격히 줄이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부문에서 다수가 안심하고 자신의 역량을 계발할 동기를 갖게 된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와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다양한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부문 일자리에 대한 기회를 비수도권, 고졸자 등에 확대하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녹색산업, 순환경제, 플랫폼 경제 등과 같이 새로 성장하는 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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