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은 하나
장마가 끈끈하다는 표현보다는 습하다란 말이 더 어울리는 거 같다. 예전에 에어컨이 빵빵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는 이맘때 끈끈한 피부가 불쾌감을 불러오곤 했다. 하지만 이젠 제습기능이 딸린 에어컨 덕분에 뽀송한 장마를 보내고 있다. 빨랫감도 후끈한 건조기 덕에 보들보들한 수건으로 닦아낼 수 있게 됐다.
윙윙거리며 평안함을 깨는 모기는 변함이 없다. 잠깐 방심하면 생기는 반갑지 않은 날벌레들도 변함이 없다. 변해서 좋은 것들과 변하지 않아서 끊임없이 불편한 것들 처럼 우리 마음도 바뀌는 것과 꾸준한 것 그리고 바뀔 수 없는 것이 있다. 오늘은 바뀌지 않는 진심을 이야기 해 보고 싶다.
다른 학년들도 불안함을 느끼지만 현재 고1 학생들은 다른 학년보다 느낌이 남다른 경우가 더하다. 중학교 때와는 다른 공부 방법, 시험 과목, 시험 범위에 따른 혼돈, 낯선 점수, 점점 무너지는 자신감 등 시기적으로 잔뜩 위축되고 있다. 나름 상위권이라고 생각했던 중학교 성적이 고등에 와 보니 중하위권으로 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몰랐던 복병이 하나 둘 나타나더니 어느새 자신의 위치는 공부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중학교 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책상에도 오래 앉아있었고, 인강도 열심히 들었다. 학원도 더 늘어나 숙제 하기가 벅차지만 게으름 부리지 않고 정성껏 해 갔다. 중간고사 성적도 모의고사 성적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낯선 점수로 채워지고 부모님은 공부 열심히 안한다고 날카로운 눈매로 감시 아닌 감시자가 되어 간다.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르는 가여운 우리 아이들. 다른 친구들은 자신있게 진로를 적어내는 데, 내 머리 속에는 떠오르는 진로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는다. 나만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점점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이제 진짜 공부하기 싫다는 생각과 도망 가고 싶다는 비겁함만 남아 있다. '망했다'는 좌절감 속에 이미 자존감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핑계가 생기면서 공부 하기 싫은 것을 속이기 위한 괴로움만 키워가고 있다.
대학은 가고 싶은 데 공부는 하기 싫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좋은 대학은 가고 싶은 데 성적은 안나오고 답답하기가 말할 수 없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데 진로를 정해 학생부에 올려야 한다고 한다. 울고 싶을 뿐이다. 여기서 진심은 뭘까? 공부하기 싫은 것과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것, 이 두 가지가 바뀌지 않는 오늘의 진심이다.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이 없어도 된다. 나는 반 백을 살아온 어른이지만 지금도 뭘 하고 싶은 지 모르겠다. 그러니 열 일곱 청춘 시작되는 아이들은 없는 게 당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원하는 것은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깊숙하게 숨은 진심은 남아있다. 하고 싶은 것과 대학생이 되는 것, 둘 중에 빨리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고3 수능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대학생이 되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솔직한 선택으로 시간을 채우면 될 수 있다.
힘든 선택에 마음 고생하면 지치게 된다. 포기하지 않으려던 것들도 모두 놔 버리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이 원하는 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자신에게 솔직해 지면 된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부족한 것에 인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갖으면 된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면 싫은 것도 참을 수 있고 그것이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눈 앞에 그릴 수 있고 막연한 대상이 아닌, 대학생이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나만 선택한 순간에 짧게 반복되는 습관으로 원하는 대학교 학생이 되는 길은 힘들지 않다.
고1 학생들과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은, 이번 기말 고사 성적 나빠도 대학 갈 수 있습니다. 지금 보는 모의고사 1등급 나온다고 대학 잘 간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1등급 안나온다고 망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그 선택, 한 가지만 가지고 그 마음만 잃지말고 작은 습관을 만드는 것에 솔직하면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