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소설. 대개 인생의 한 단면을  포착하여 그리는데 유머, 풍자, 기지를 담고 있다.

이 글은 일단 짧기는 한데 풍자와 기지는 있나요?  시작합니다.

 

<월세>

우리는 부모님께 가급적 덜 부담드리기 위해 직장생활하며 모아온 돈의 한도내에서 결혼 준비를 하기로 했다. 집 역시 당연히 포함이었다.

젊은 신혼부부에게 풍족한 돈이 있을리 만무였다.

우리는 수없이 발품을 팔고 다닌 끝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했다. 전세금이 부족했다. 수중에 있는 금액에 딱 맞는 집도 있었지만 그 집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의 첫 보금자리인데. 부족한 전세금을 월세로 돌리라는 부동산 아줌마가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집주인도 월세받으면 더 좋다고 거든다. 둘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고 조금씩 아끼면 대충 월세를 감당할 법도 했다. 첫 반년은 너무 좋았다.

한번도 독립된 생활을 해본적 없는데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둘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러다 예정에 없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첫아기가 찾아온 기쁨도 잠시 이내 생존을 위협할 만큼의 무서운 입덧이 시작되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회사에서는 휴직하려면 퇴사하라고 한다.

임시직은 아무도 오려하지 않는데 인력 보강 없이 내가 하던 일을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하며 모아놓은 여유자금까지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 월세까지 내며 생활한다는것은 엄청난 무리였다.

그러나 별다른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버틸만 했다. 아이가 태어난 다음부터는 예상치 못한 푼돈들이 여기 저기 필요해지면서 결국 매달 돌아오는 월세는 큰 부담이 되었다. 결국 월세가 밀리는 달이 많아지자 집주인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젊은 애기 엄마라서 내가 꾹 참아볼라구 했는데....... 나도 이거 월세 받아서 대출금도 내야 하고 여기저기 쓸곳이 있는데..... 애기 엄마가... 자꾸 이렇게 월세가 밀리니까... 나도 돈들어갈 곳에 사정해야 하고..너무 힘드네....."

"네네... 너무 죄송해요.. 다음달 부터는 밀리지 않고 제 날짜에 꼭 드리도록 할께요..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나도 애기 엄마라서 왠만하면 사정이 있겠지 생각했다니까... 암튼 꼭 좀 신경써서 날짜 잘 맞춰줘요."


전화를 끊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늘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고, 사람들에게 못된 짓 하지 않고 폐끼치지 않고 살려 노력했기에 그동안 누군가에게 딱히 혼나고 욕먹을 일도 없었다. 뭔가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다. 위로받고 싶어 전화를 들었다.

그런데 아무한테도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 억울하고 속상한 사연을 말할 곳이 없다는 것이 더 나를 슬프고 힘들게 했다. 너무 외로웠다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인간은 섬이다' 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이런건가? 어른의 삶이란것은? 억울하고 힘들어도 그저 꾹 참고 버텨야 하는것인가.

저녁에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상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친 모습으로 힘들게 들어와 애써 반갑게 아이를 안고 오늘 하루 혼자 아이 보느라 힘들지 않았느냐 묻는 남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속울음을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흘러갔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첫 해에, 남편은 그동안 모은 저축액과 약간의 대출을 받아 오피스텔을 하나 장만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매달 월세를 받을 수 있어 우리는 좋았다. 일해서 벌지 않아도 통장에 매달 일정한 금액이 들어오는 것을 볼때 마다 남편과 나는 이래서 다들 부동산에 투자하나보다며 신나했다. 오피스텔의 첫 세입자는 한번도 밀리지 않고 월세를 내주며 우리의 투자에 대한 기대와 확신에 보답해주었다. 그러나 1년후 들어온 새로운 세입자는 달랐다. 첫 두달은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부터는 월세 내는 날짜가 조금씩 밀리더니 두달씩 세달씩 밀리는 달이 생겼다. 처음에는 세입자에게 월세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확인해달라는 문자만 보냈다. 그러나 세달치 월세가 밀리자 나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했다.

"월세가 자꾸 밀려서 제가 곤란하네요. 한두번도 아니고 몇일 밀리는것까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몇달을 밀리면 어떻해요... 저도 이 오피스텔 살때 대출받았기 때문에 이자도 내야하는데 월세를 안주시니까 넘 힘들어요."

"제가 여기 오피스텔 들어올때 계약한 일이 미뤄져서요.. 그게.. 금방 다시 시작할거라....... 보증금도 있고하니 조금만 실례하겠습니다. 다음달 부터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짜 다음달 부터는 괜챦으신 것 맞죠?? 정 힘드시면 부동산에 얘기하셔도 되요."

"부동산에요??? 뭘........"

"나간다고 말씀하셔도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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