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의 저서 ‘위험사회(원제, Risk Society)’는 1986년에 발간되었습니다.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는 데 우리는 민주화사회가 된  1997년에야 뒤늦게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논술전형이 도입된 2000년대 중반 울리히 벡의 책은 논술교재로 여기저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책은 86년 생입니다 벌써 삼십대 중반이 된 책입니다.

뉴밀레니엄의 기대에 부풀었을 1980년대, 울리히 벡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21세기를 ‘위험사회’라고 명명했는 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그의 출판동기가 아니라  출판 계획을 앞당기는 계기에 불과했습니다.

내용은 많이 아시겠지만 불평등은 위험사회에서 위험 재난이 누구를 가장 괴롭히는 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울리히 벡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보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의 유명한 이 말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이 말은 저자의 표현에 대한 오해입니다.  빈곤은 더 가난한 사람 덜 가난한 사람이 있지만 위험은 왠만하면 다 힘들어지니 정말 소수만 안전할 수 있으니 더 나빠진다는 뜻입니다. 

 

제가 사는 서초동 아파트가 언덕에 있는데도 1층에 지금 물이 들어와서 침수될 정도니,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침수가 되더라"

그러니까 대통령의 말씀처럼 많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의 인자와 배경으로서 윤리성을 상실한 과학기술과 금융자본, 무절제한 환경파괴, 억압당한 개인과 집단의 반발, 정보사회의 위험성 등을 지적했습니다. 1980년대에 앞으로 나올 그 문제들을 지적했으니 벡의  혜안과 통찰이 대단합니다.  

틀린 말도 있습니다.

벡은  21세기의 위험은 ‘danger’가 아니라 ‘risk’라고 했다.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인 환경과 결합돼 나타나는 재난이라고 본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보면 복합 재난입니다. 코로나 감염병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기후위기와 인플레이션의 결합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과 사람이 대응하기 어려운 것들의 결합이죠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정리한 것입니다.

“디지털시대, 초연결사회인 21세기 위험의 전염성은 빠르다. 특정 지역이나 계급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과학 발전에 비례해 위험 인식도가 높아진다. ‘안전’의 가치가 가장 중요해진다. 안전은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 소비재가 된다.”

21세기의 위험은 부메랑이 돼 결국 내게 돌아온다.  부유한 국가가 가난한 나라에 저지른 범죄, 환경파괴라든지 자원약탈이라든지 억압과 지배라든지 하는 것들이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부유한 국가로 돌아온다.

해결책에 대해서 울리히 벡은 사실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습니다만 소통 신뢰 협력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역시 지금 우리사회에서 부족한 것들입니다.

울리히 벡이 제시하는 이상적 결론은 ‘성찰적 근대’라는 것인데 과연 이 경쟁의 시대 학교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배우면서 예측불가능한  4차산업혁명으로 일자리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는 걱정속에서 과연 ‘성찰적 근대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울리히 벡은  2014년 방한 때 “세월호 참사에서 한국 정부는 무능과 무지를 드러냈다. 국민은 분노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그 원인 중 하나로 ‘조직화된 무책임’을 지적했습니다.  

울리히 벡은 아내 엘리자벳과 함께 대담집 형태인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이란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위험사회는 위험 가정으로 번져나갑니다.

 결혼을 통해 하나로 묶어주는 가족이라는 것은 물질적 안정과 애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온갖 위기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아마 결혼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고독의 위협이야말로 결혼에서 가장 믿을 만한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은 더 이상 일상은 아니다. 불안과 외로움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출구이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며 충족이라는 것으로 치환될 수도 없다. 사랑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개인의 욕망이다.

따라서 그동안 가정에 대해 무조건 좋은 것,혹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가정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혹은 개인과 개인의 차이를 표면으로 노출시키는 장소다. 따라서 하나의 가정에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여러 명의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하나의 공동체로서 이해하던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가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무조건적인 부정을 낳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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