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성은 딱 알맞다는 것입니다 범위가 좁죠 그래서 시의성과 짝이 됩니다.

시의성은 당시상황입니다. 그러니 당시상황은 다음상황이 되면 잘 안 맞게 되고 시의적절함은 당시상황으로는 딱 맞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나면 안 맞게 됩니다. 시의적절성은 그래서 근사해보이지만 단기적인 방편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시의성보다는 시대성이 적절성보다는 타당성이 더 중요한 지표이어야 합니다. 타당성은 맞는 성질이 아닌 옳은 성질입니다. 당연히 가치판단이 들어갑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숱한 논란속에도 10년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은 교육적으로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치가 교육적이다라고 할 때는 타당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의 능력을 측정해야 한다면 타당성보다는 적절성이 더 맞을수가 있습니다. 요컨대 적절성의 측면에서 학종이 우월하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시대타당성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넓은 범위인 시대정신이 있습니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지향점일수도 있지만 보편성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대통령은 “교육부의 첫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라며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의성이 있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타당성의 지표로 놓고보면 논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대성, 시대정신으로 놓고보면 틀렸습니다.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 생태위기 속에서도 삶의 전환을 말하는 목소리가 시대정신일 것입니다.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정말 오래된 말입니다. 헤겔이 사용했으니까요!

 

헤겔답게 어떤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시대정신이라고 불렀으며, 그 시대정신은 한 시대가 끝날 때에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시대의 끝은 왜 일어날까요?  저는 그래서 국가경쟁력보다 경제적 불평등 생태 기후위기에서 우리태도의 변화가 우리 시대의 정신이 될 수 밖에 없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흥청망청이 우리시대였다면 이제 자정이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괴테도 《파우스트》 속에서 썼는데  헤겔은 시대정신을 역사의 과정(혹은 단계)과 결부시켜 그것을 개개의 인간성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가 역사 속에서 전개시켜나가는 동력으로 본 것입니다

보편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헤겔의 시대정신은 민족주의가 될 수는 없고 평화주의 민주주의 이런 것은 가능합니다.

더구나 헤겔은  역사가 진보하고 발전한다는 견지이니 더 다원적이고 더 평등하고 더 평화로운 것이 발전이고 진보라 하겠습니다.  역사의 진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은 시대정신과는 상충됩니다.

그래서 시대성은 더 평등하게 더 평화롭고 더 조화롭게가 되는 것입니다.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도 않습니다. 시의성이 시대성일 때입니다.

지금 교육부의 입장이 근시안적으로 산업인재 공급에 있을 수 없습니다.

북극곰처럼 우리에게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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