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요는 한국어로 만엽이라고 읽는데 아마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만엽집으로 더 잘 알려졌을 것이다. 만엽집은 한국으로 치면 고전시가와 같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26수 정도밖에 내려오지 않지만, 만엽집에는 수천편에 달하는 고대 가요가 수록되어있어 그 역사적인 가치가 높다. 수록된 시는 4세기(347년)부터 8세기(759년)까지 그 작성연대가 걸쳐있는데, 대다수가 600년대에 작성되었다.

사진출처 : 나무 위키
사진출처 : 나무 위키

​신카이 마코토의 <언어의 정원>의 일본어 제목은 "言の葉は庭"(코토노와노이와)이다. 言の葉이 "언어"라고 번역되어서 원래의 맛을 못살리는 감이 없잖아 있다.

여기서 言の葉은 상당히 시적인 표현이다. 만엽을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고대 일본인들이 언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 일본인들은 말을 나무로 보고, 언어는 그 나무에서 열리는 일종의 잎사귀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말이 피워낸 예술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언어의 정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만엽의 정원>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런만큼 만엽이 영화 내에서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사용된다.

雷神 小動 刺雲 雨零耶 君将留

우레소리가 조금씩 울려오고 구름 흐리니 비도 오지 않을까 그대 붙잡으련만

영화에서 히로인인 유키노 유카리가 읊은 단가이다. 현대 일본어와는 달리 이 때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한국의 향찰처럼 한자의 음을 빌린 "만요가나"를 문자로 사용했다.

떠나버릴 것 같은 남자를 붙잡지 못하는 여자의 노래인데, 영화의 후반부 내용과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 자세한건 영화를 보시면 알 것이다. 이 가사는 상문(相聞)가라고도 한다. 상문은 서로 안부를 묻는다는 뜻이지만 만엽에서는 남녀의 연애를 뜻하는 말이다. 비슷하게 천둥 소리도 연애를 은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본 신화에서 스사노오가 중요한 신으로 나오는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고대 일본에서는 천둥을 신성시했다. 신비롭고 경외하는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대 일본의 시적인 요소와 달리 현대 문학에서 비와 천둥은 공포나 우울감을 상징한다. 현대 문학의 연장선에 있는 현대 영화에 속한 <언어의 정원>에서 주인공들이 결국 헤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장치이다.

雷神 小動 雖不零 吾将留 妹留者

우렛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고 비가 안와도 나는 여기에 머무르오 님 가지 마라 하면

이 시는 남자 주인공인 타카오가 답한 답가이다. 떠나는 남자를 붙잡지 못하는 여자에게 하는 답가라는 점으로 해석하면, 자신은 언제까지나 수동적으로 남을 떠내보내지 말고 주체적인 연애를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겠다.

비와 천둥은 고전 문학에서 연애를 상징할 수 있지만 동시에 현대 문학에서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상징하기 때문에 모순적인 점이 생기게 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두 커플이 만날 수 없는 영화 속의 상황에서 이런 모순은 더욱 극대화된다. 그렇기에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비가 오지 않더라도 자신이 나아가 남을 만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대학교에서 고전 일본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주로 불교의 영향력이 두드러지는 편인데, 신카이 감독의 영화는 일본의 고전 문화나 신토 같은 일본 고유의 것들이 많이 부각된다. 그중에서 <언어의 정원>은 직접적으로 일본 고전 시가에 대한 메타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적인 정서가 많이 반영된 영화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물론 그것만 가치가 높은 것은 아니다. 난 신카이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영화가 이것이 거의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한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가 이 영화보다 한 500배정도 더 히트치긴 했지만 <언어의 정원>의 작품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현실 대응 방식에 있어 가장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는데, 운명 극복적 주제를 담고 있는 두 영화와 달리 신카이의 원래 영화는 운명 순응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게 극대화된게 <초속 5센티미터>였고 어느정도 대중성과 타협을 보아서 희망적인 결말을 낸게 <언어의 정원>이었다. 근본적으로 <언어의 정원> 역시 남녀간의 사랑이 기약없이 미뤄지는 상황이므로 남녀가 헤어지는 운명 자체는 순응하고 할 수 있으나, 언젠가는 다시 만날 그날을 위한 희망이 있다는 점에 있어 영화의 플롯이 마음에 드는 면이 있다. 많이 성숙하고, 현실적인 남녀간의 연애 이야기, 즉 순수 문학의 장르에 속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한다.

만약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네편을 유심히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칠석은 조금 지났지만, 야마노우에 오쿠라의 만엽으로 마친다.

 

風雲は二つの岸に通へども我が遠妻の 一云 愛し妻の 言ぞ通はぬ

바람과 구름은 은하수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지만 멀리 있는 아내의 말은 오가지 않는다.

たぶてにも投げ越しつべき天の川隔てればかもあまたすべなき

돌멩이라도 던져 닿을듯 가까운 은하수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가로막는 탓일까? 건널 방도가 없구나.

山上憶良 (660~733), 만엽집 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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