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4일 공개된 여론조사업체 Harris X의 미국 양당 경선 주요 후보자 지지율은 이렇다.

민주당: 바이든 54%, 케네디 14%, 윌리엄슨 5%

공화당: 트럼프 53%, 드산티스 17%, 펜스 4%, 스콧 4%, 헤일리 3%

재밌는건 공화당에서 드산티스가 얻는 지지율만큼을 민주당에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얻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조사에서는 RFK 주니어가 드산티스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드산티스는 미국에서 4번째로 큰 주인 플로리다의 주지사이지만 RFK 주니어는 백신 음모론 운동가에 불과하다. 둘의 체급 차이를 보았을 때 우리는 두가지의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드산티스는 제2의 젭 부시라는 점이고, 바이든은 제2의 카터라는 점이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을 선언하면 대통령이 속한 당의 경선은 거의 거수 투표나 마찬가지이다. 1996년 재선에 도전한 클린턴은 민주당 경선에서 유효표의 89.0%를 득표했다. 2004년 부시는 98.3%를, 2012년 오바마는 88.3%를, 2020년 트럼프는 94.0%를 얻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5~60%대 지지율에 머무르고 있는 바이든의 재선 지지율은 민주당 내에서 이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가 총 세번 있었다. 1968년 존슨, 1976년 포드, 1980년 카터가 그것이다.

존슨은 베트남 전쟁 때문에 경선 도중에 탈락했고, 포드는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닉슨의 모든 법적 책임을 사면한 여파로 로널드 레이건을 간신히 꺾었고 카터는 오일쇼크와 이란 대사관 인질극의 여파로 지지율이 추락해 테드 케네디를 겨우 제치고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재선출되었다.

경선에서 간신히 이긴  포드와 카터는 본선에서는 재선에 실패했다.

현재 바이든과 트럼프의 지지율이 백중세이고 어떤 조사에서는 바이든이, 어떤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앞서고 있다. 이것은 조 바이든의 재선 가도가 다소 불투명하다는 점을 나타내는데, 1979년 이맘때쯤의 대선 지지율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1979년 당시 레이건의 당선은 예상하기 힘든 것이었고 실제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카터는 62%를, 레이건은 33%를 얻는데 그쳤다.

레이건은 급진적인 보수 정책으로 당 내에서조차 반대파의 도전을 받고 있었고

(당시 공화당의 주류는 포드, 키신저, 록펠러 등을 위시로 한 중도우파였고 레이건은 비주류인 강경우파였다) 카터는 레이건에 비해 훨씬 안전하고 중도적인 선택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아시다피시 본선에서 카터는 850만표차로 레이건에 밀려 낙선했으며 겨우 6개주에서만 승리해 49명의 선거인단을 얻는데 그쳤다.

역사상 재선에 도전한 대통령이 이렇게 무참하게 패배한 것은 1932년 대공황 여파로 낙선한 후버 대통령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역전패를 단순히 이란 인질극 또는 오일쇼크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1980년 대선에서 카터의 참패는 민주당 그 자체에 귀인한다. 

재임기간 중 카터 대통령의 실적은  재난에 가까웠던 경제 지표인데  퇴임 이후 사랑의 집짓기로 과를 덮었다.

​ 사실, 1976년 대선을 앞두고 카터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카터는 여론조사에도 못들어간 땅콩 농장 주인 출신 지역 정치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카터의 승리 요인을 단순히 "워터게이트 이후 정치 혐오에 빠진 미국인들이 신선하고 청렴한 인물을 지지해서"라고 설명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틀린 설명이다. 1970년대 미국 민주당은 크게 보았을 때 테드 케네디와 조지 맥거번을 위시로 한 당내 진보파(케네디파), 휴버트 험프리와 월터 먼데일을 위시로 한 당권파(존슨파), 조지 월리스를 중심으로 한 당내 극우파(남부 민주당파)로 나뉘어져있었다. 문제는 1976년 대선을 앞두고 테드 케네디(41%), 조지 맥거번(12%), 조지 월리스(16%)에 비해 휴버트 험프리(8%), 월터 먼데일(1%)의 지지도가 매우 낮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당권을 잡고 있던 험프리는 1976년 대선에서 건강을 문제로 불출마했고, 먼데일도 불출마했다. 대신 계파 색이 적은 지미 카터를 지지했다. 그렇게 험프리와 먼데일의 조직이 카터를 지지했고 카터는 제리 브라운, 조지 월리스, 조지 맥거번 등 경쟁자를 제치고 1976년 대선 경선에서 승리했다. 지미 카터가 부통령 후보자로 앞서 언급한 월터 먼데일을 지명했다는 점에서, 지미 카터가 민주당 당권파 권력 싸움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민주당 당권파가 자기 마음대로 선출한 카터인만큼 행정부가 잘 돌아갈리가 없었다.

 1980년 대선에서 카터의 대참패는 이란 인질극 사건이나 오일 쇼크에서의 미숙한 대처도 큰 역할을 했지만 명확한 정치적인 비전 없이 정치를 위한 정치, 반대를 위한 반대, 권력 투쟁을 위한 권력투쟁을 일삼았던 민주당 당권파의 실책의 결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1980년 대선을 앞두고 시행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카터가 우위를 잡았지만 이는 단순히 "레이건이 싫어서" 카터를 지지하는 여론에 가까웠다. 진정으로 카터가 좋아서 지지한 여론이 아니었다. 카터를 뽑은건 민주당 당권파였지, 민주당 지지자들과 미국 국민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1980년 4월, 공화당 내 좌파 세력을 대표하던 존 B. 앤더슨은 레이건의 극우적인 정책에 반발하며 공화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웃긴건 레이건의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했고 카터의 지지율은 20%p가 빠져서 대선이 백중세 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카터가 뭘 한것도 아니고, 그냥 레이건이 아니라서 지지한 것이었다보니 카터의 지지율이 전부 앤더슨으로 빠진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레이건은 대선 유세와 토론회에서 자신의 장점을 끊임 없이 부각하며 카터를 추격했다. 토론회에서 카터는 레이건이 당선되면 워터게이트의 악몽이 부각될 것이라며 레이건의 경제 정책과 사회 정책을 맹렬이 공격했다. 네거티브로 일관한 카터에 대비해 밝은 미래와 "위대한 미국 재건"을 내세운 레이건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간 것은 당연했다. 이것이 1980년 대선 결과의 전말이다.

바이든은 어떤가? 1980년 대선과 2024년 대선이 왜 비슷하다는지에 대해 여기까지 읽었다면 어느정도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이든은 슈퍼 화요일 경선 직전까지 샌더스는 물론 부티지지에도 뒤쳐져있었다.

샌더스의 높은 지지율을 경계한 민주당 주류, 즉 부티지지, 클로버샤, 해리스 등이 모두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면서 슈퍼 화요일 당일에 바이든의 지지율이 폭등했고 바이든은 "당권파 단일 후보"로 샌더스와 워런을 꺾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마치 "당권파 단일 후보"였던 카터가 1976년 대선을 앞두고 테드 케네디, 월리스, 제리 브라운을 꺾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바이든과 카터는 매우 유사한 환경에서 당선되었다. 카터는 1976년 대선에서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의 대선에서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포드를 꺾었고, 바이든은 2020년 코로나 정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트럼프를 꺾었다. 카터는 신선함을 무기로, 바이든은 노련함을 무기로 삼았다는 차이밖에 없다. 결국 그들은 민주당 당권파 정치 싸움의 창작물이요 정치 양극화와 재난 수준으로 부패했던 공화당 정권에 대한 심판 여론만을 등에 업고 당선된 허상에 불과했다. 바이든과 카터야말로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적인 대통령이다.

​카터와 바이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레이건과 트럼프는 미국인들에게 허상일지라도 더 나은 삶을 약속했고 메시지도 명확했다.

1980년 대선 당시 레이건의 슬로건은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듭시다)였다. 카터의 슬로건은 "Why Not the Best?"였다.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의 슬로건은 "Build Back Better"(더 낫게 재건하자)였다. 무엇이 Best이고 무엇이 Better인가?

이에 반해 레이건과 트럼프는 자신이 당선되면 미국을 상상할 수 없을만큼 멋진 나라로 만들고 모두가 선망하던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꿈꿀 수 있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이것은 워싱턴 엘리트들이 아니라 미국인들이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레이건과 트럼프의 약자 혐오, 극우적인 국내외 정책, 극단적인 포퓰리즘 성향 등을 배제하고 대선 메시지만을 보자면, 그들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줬다. 그 점에서 카터와 바이든은 전략적으로는 모자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둘 다 재선을 앞두고 치러진 대선 경선을 앞두고 케네디 가문으로부터 예상 외의 일격을 맞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테드 케네디는 제법 진지한 정치인이었고 RFK 주니어는 음모론자라는 점이다. 하지만 RFK 주니어는 드산티스가 공화당 내에서 얻는 지지만큼이나 민주당 지지층을 상대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바이든이 정말로 당원의 지지를 받아, 그리고 미국인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면 이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바이든은 샌더스와 트럼프, 그 외 다른 모든 세력을 무너트리기 위해 워싱턴 엘리트들이 창작한 정치인에 불과하고 카터도 그랬다. 그래서 당 내 민심 이반이 일어났던 것이고 이것이 실제 대선에서의 민심 이반으로도 이어진 것이라 하겠다.

 1976년에나, 1980년에나, 2024년에나 미국 민주당 지도부(DNC), CNN, NYT, 워싱턴 포스트, MSNBC, 그외 기타 미국 진보 엘리트 집단은 미국인들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이 미국의 미래를 책임져야하는 세력이라고 규정짓는 착각을 했는데, 이것이 카터나 바이든과 같은 후보를 만든 것이라고 사료된다.

​ 트럼프는 레이건이 아니지만, 최소한 트럼프는 자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진정으로 지지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바이든과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지미 카터는 젊을 때 퇴임해서 집을 지으러 다녔는 데 바이든은 집에 가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괜찮은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