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세이지의 걸작 '플라워 킬링 문'의 포스터
마틴 스코세이지의 걸작 '플라워 킬링 문'의 포스터

마틴 스코세이지의 신작 플라위 칼링 문을 보며 이제야 미국인들은 인디언을 미국 땅에서 지운 존재들이 자신들의 선조임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스코세이지가 여든이 넘어도 그렇게 폭력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역사는 건국부터 지금까지 폭력 그 자체의 역사였으니까요. 오새아자 안다언들이 소유권을 가진 땅에서 석유가 나자 백인들이 그 땅을 차지하려고 인디언 여성과 결혼하고 아내의 가족들을 차래로 죽여 땅을 차자하려는 음모를 세웁니다. 그 음모는 자칭 인디언의 구원자로 자신을 소개하며 그들에게 학교 병원 등 문명을 보급했다고 주장하며 인디언과 공존을 주장하던 그 지역 유지(로버트 드니로)였습니다. 그는 조카를 행동대장으로 삼아 의도적으로 인디언 모녀 가족에 접근합니다. 그러다 진짜 사랑에 빠진 다카프리오는 번민하고 그를 사탄처럼 유혹하는 삼촌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햄릿이 됩니다. 완전범죄가 될 뻔했는데 여주인공이 워성턴으로 가 당시 공화당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를 만나 읍소를 하며 상황이 반전됩니다. 쿨리지는 FBI의 설립자이고 후버를 초대 국장으로 앉힌 주인공이죠. FBI의 공식 첫 임무가 오세이지 인디언들의 연쇄 살인에 대한 수사였습니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도의 역작 후버에서 에드가 J 후버역을 맡았던 배우가 바로 디카프리오였죠.

왜 스코세이지는 인디언을 다룬 영화에 순혈 인디언 배우를 쓰지 못했나?

영화 여 주인공의 외모가 인디언 같지 않아서 알아보니 릴리 글래드스턴이란 배우였어요. 아버지는 인디언 어머니는 영국계 미국인이었네요. 영국 수상인 글래드스턴과 혈족이었던 거죠. 영화에서 나이 든 인디언 여성이 우리가 백인과 결혼하면 결국 인디언이 사라지게 될 거라고 걱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 스코세이지도 순수 인디언 배우들을 찾기가 어려워서 결국 혼혈 이중 정체성을 지닌 배우들을 인디언으로 등장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막판에는 스코세이지가 직접 출연해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직접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릴리가 맡은 역은 순혈 인디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더 이상 순혈 인디언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뇨 알콜 중독 마약 중독으로 대부분 조기 사망하는데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강제로 백인과 결혼했으니까요. 어찌 보면 이렇게 강제적으로로 섞이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죠. 스코세이지는 미국이 평화의 사도는 결코 될 수 없으며 그 손에 묻은 피를 씻을 수도 없다고 보는 듯합니다.

나치 시대 때 실존했던 검은 독일인들이 겪은 잔혹사 '훼어 핸즈 터치'
나치 시대 때 실존했던 검은 독일인들이 겪은 잔혹사 '훼어 핸즈 터치'

 

이중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의 영화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극장 개봉돼 지금은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웨어 핸즈 터치라는 작품이 떠오릅니다. 이 작품은 실존했던 인물, 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프랑스에 빼앗겼다 히틀러가 다시 되찾은 라인란드 지방에서(실제 비스마르크가 지휘했던 보불 전쟁 전에는 프랑스 땅이었고 그 유명한 알퐁소 도테의 마지막 수업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다룬 이야기죠.)프랑스 세네갈 용병과 결혼한 아리안 족 여성이 자신의 혼혈 딸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그녀가 수용소에서 겪은 고초를 다룬 작품인데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헝거 시리즈로 유명한 아만들라 스텐버그였습니다. 성은 독일계인데 외모는 흑인입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흑인 아버지가 덴마크인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순혈 순수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섞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스코세이지도 더 이상 순혈인디언이 사라진 미국이 폭력의 나라라고 비판하지만 저는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이중 정체성이야말로 인류의 갈등과 증오를 끝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배우 모두 자신의 뿌리 양쪽을 다 인정하면서 그만큼 리버럴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었으며 또 그만큼 진보적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요. 인간의 본질이 섞임을 일찍부터 알았다면 스코세이지가 영화에서 그렇게 섞임을 폭력적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사실 스코세이지는 부모 모두가 시칠리 출신인 마피아로 치면 성골 중의 성골인 사실에 자부심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칠리라는 곳의 역사를 알면 순혈이란 말이 얼토당치 않다고 느낄 수 있죠. 한 때는 그리스 한 때는 바이킹 한 때는 터키 한 때는 프랑스 지금은 이탈리아에 속해 있으면서 가장 많이 섞인 집단이 바로 시실리인들이기 때문이죠. 섞임은 좋은 것이지만 영화 플라워 킬링 문처럼 다수의 종족이 소수의 종족을 지구상에서 지우기 위해 치러진 섞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소코세이지가 하고 싶는 메시지라고 저는 평가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당뇨를 인디언 절멸에 어떻게 사용했나?

다시 영화로 이야기를 돌아보면 섞임과 함께 또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당뇨입니다. 당뇨병은 미국의 폭력에 가장 잘 어울리는 병이라는 사실이죠. 당뇨병은 1922년 돼지에게서 인슐린 추출이 되기 전까지는 걸리면 1년 내에 죽는 불치병이었습니다. 인슐린은 당뇨를 완치하는 치료제가 아니라 삶의 질이 극한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환자의 삶을 연명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신경 손상으로 시작해 시력 상실 다리 절단 마지막으로 심근경색 혹은 뇌졸중으로 모든 병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는 게 당뇨입니다. 미국의 인디언들의 당뇨 유병률(23%)은 백인(8%)은 물론 히스패닉 아시안 심지어 흑인보다도 높은데 전통적인 식물 위주 식단에서 강제적으로 육류 가공식품 과당류 등을 주식으로 먹게 되면서 생긴 병입니다. 백인들 입장에서 당뇨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인디언들을 죽이는 급행열차가 되였죠. 영화에서 디카프리오가 당뇨인 와이프에게 끝없이 핫케이크 등 단것을 먹입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발명되어 극소수의 사람만이 맞았던 인슐린 환자를 아내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동물 안락사용으로 쓰이던 진정제 바르비탈까지 섞여 맞히죠. 그녀는 서서히 죽어갑니다. 디가프리오는 양심의 가책을 분명히 느끼며 자신이 바르비탈을 먹기까지 하죠. 그는 자신의 아이까지 낳은 아내를 사랑하며 결혼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연과 운명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손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끕니다.

미국의 사법 정의 히틀러를 잡을 수 있다면 괴링에게도 무죄를 선언한다

끝으로 이 영화를 법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보죠. 스코세이지는 백인의 끝없는 탐욕을 비판하면서 그나마 FBI와 미국의 사법 제도가 정의감의 추를 잡아주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법은 플리 바기닝(검찰과 양형 거래)라는 말이 있듯이 굉장히 자본주의적으로 움직입니다. 영화에서도 네가 삼촌을 배신하는 증언을 하면 너는 종신형을 받아도 사면으로 곧 풀려날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합니다. 디카프리오가 삼촌의 지령을 받아 사용한 또 다른 범인들도 그런 식으로 배신을 꼬드켰죠. 쉽게 말하면 미국의 사범 정의는 범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지은 죄에 합당한 만큼만 죄 값을 치르자가 아니고 히틀러를 잡기 위해서라면 헤르만 괴링도 무죄로 풀어 줄 수 있다입니다. 결국 보스 한 명만 처단하면 정의가 구현되고 미국이 공정한 사회로 갈 거라는 믿음 하에서 FBI와 연방 검사 시스템이 탄생했음을 알 수 있죠. 증언이나 자백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이 방법이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과학 수사가 발전한 시점에서도 여전히 플리 바기닝이 남아 있는 건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이며 노골적인 폭력성을 감추는 데 거래 즉 딜이 사용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물론 소코세이지가 그 부분까지 비판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궁금증이 남네요. 미국의 역사 문화 종교 경제 모든 것이 폭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 미국의 사법 정의는 그 폭력성에서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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