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은 어떤 미국을 꿈꾸는가

몇 년에 한번씩 역사학자, 정치학자, 평론가 등을 대상으로 설문해 역대 대통령 순위를 꼽는 미국정치학회의 최신 대통령 순위 프로젝트(Presidential Greatness Project Expert Survey) 결과가 이틀 전 발표되었다.   

몇몇 대통령은 순위가 올랐고 일부는 하락했으며 이전의 조사인 2015년과 2018년 결과와 비교했을 때 유의미한 순위 변동을 보인 대통령들도 있었다.  또한 일부 대통령의 평가 변화는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서는 이번 결과와 관련된 몇가지의 포인트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압도적 꼴지의 트럼프

꼴지를 차지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출처: NPR)
꼴지를 차지한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출처: NPR)

 표에서 눈에 띄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확연한 "꼴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겨우 10.62점을 받는데 그쳤는데, 이는 44위이자, 남북전쟁의 실질적인 원인제공자로 비판받는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의 16.71점보다도 낮은 것이다.  친민주당 성향 학자들에게는 겨우 6.66점을 받는데 그쳤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결과가 아니다. 친공화당 성향 역사학자들도 트럼프를 41위로 평가했다. 보수성향까지 확대하면 43위로 더 떨어진다. 보수성향 사학자들은 트럼프를 26.78점으로 평가했는데, 이는 같은 집단이 평가한 바이든의 45.52점의 반 정도밖에 안되는 점수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어느정도 현재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주요 지지층은 저소득층, 저학력자, 시골 거주자인데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은 그러한 집단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트럼프의 포퓰리스트적인 메시지보다는 안정을 추구할 것이므로 평가가 낮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동시에 노골적으로 헌법을 무시하며 국가 분열을 부추기는 트럼프의 평가가 향후 몇십년이 지나도 "재평가"될 여지는 작다고 봐야할 것이다.

레이건보다 높은 바이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상원 사법위원장 (1987년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당시 상원 사법위원장 (1987년 /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또 다르게 주목할만한 것은 바이든이 14위로 높게 책정되었다는 것이다. 고학력자들이 바이든을 주로 지지하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바이든을 트럼프에 대비해 고평가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 성향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보다 바이든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더 놀라운 것은 바이든이 로널드 레이건보다도 순위가 높았다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번 조사에서 겨우 16위에 머물렀다. 2015년 조사에서는 11위였으나 2024년 조사에서는 16위로 5계단이나 순위가 하락했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역사학자들은 역사상 가장 과대평가된 대통령으로 케네디(84회 언급)와 함께 레이건(83회)을 꼽았다. 레이건은 반문의 여지 없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하나이지만 요근래 들어 레이건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는데 이 순위 하락은 이 점을 반영한다.

오늘날 트럼피즘의 부상이 레이건 보수주의와 연관이 없지 않다. 레이건은 자유무역으로 소득을 양극화시켰고, 노동조합을 탄압했으며 제3세계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이러한 점은 결국 중동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이나 노동권 탄압, 공공시설 부재 등 미국이 겪고있는 여러 사회적 병폐들을 낳았다. 장기적으로 레이건이 미국 사회의 모순을 극대화시켰고 이것이 오늘날 트럼피즘으로 대표되는 미국 사회의 병을 낳았다는 것에 역사학자들이 점차 동의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잭슨, 윌슨, 포크의 추락

역사학적으로 접근하자면 잭슨, 윌슨, 포크의 순위가 크게 하락한 것을 특이점으로 꼽을 수 있다. 앤드루 잭슨은 2015년 조사에서 9위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1위이다. 포크는 6계단, 윌슨은 5계단 하락했다. 이번 조사에서 제임스 K. 포크는 25위로 조사되었는데, 과거에는 10위권대 초반에 있었다.

과도한 반공주의와 인종주의 때문에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과도한 반공주의와 인종주의 때문에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의 인종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것이 큰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앤드루 잭슨은 처음으로 민중의 의사를 대변한 민주주의의 아버지이고, 포크는 영토를 크게 확장해 미국의 국력을 키웠고, 윌슨은 1차대전에 참전했고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웠으며 여성참정권, 8시간 노동제 등 여러 진보좌익적 개혁을 이룬 사람으로 고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잭슨과 포크가 인디언을 학살했다는 점이나 윌슨이 흑인을 공무원직에서 추방하고 인종간 분리를 지지했다는 점은 무시되어왔다.

오늘날에는 미국사가 백인만이 아니라 인디언, 흑인, 아시아인의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사회의 복리만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더 많은 사회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이 미덕으로 자리잡고 있다. 잭슨, 포크, 윌슨은 그런 것을 쉽게 간과한 과거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잭슨의 인디언 학살과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는 20달러 모델에서 잭슨을 배제하고 노예 해방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을 새 모델로 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Vox)
잭슨의 인디언 학살과 관련해 바이든 행정부는 20달러 모델에서 잭슨을 배제하고 노예 해방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을 새 모델로 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Vox)

물론 이것만으로 그들이 저평가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다른 치부 역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잭슨은 중앙은행을 폐쇄해 1837년 공황을 불러일으켰고, 포크는 남북전쟁의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이며, 윌슨은 1차대전 시기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고 부당하게 구속시켰다. 이런 점들은 과거에는 간과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여러 방면에서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점차 윌슨/포크/잭슨의 평가를 낮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아마 먼 미래에는 300명의 노예소유주였던 토머스 제퍼슨도 비슷한 이유로 평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닉슨보다 높은 조지 W. 부시

리처드 닉슨의 35위는 역대 모든 평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조지 W. 부시의 32위는 역대 모든 평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시대 이후 국가 통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NYT)
리처드 닉슨의 35위는 역대 모든 평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조지 W. 부시의 32위는 역대 모든 평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시대 이후 국가 통합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진 출처: NYT)

평가하기 어려운 최근의 대통령들의 평가에도 변화가 있었다.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은 오랜만에 10위권으로 복귀했는데, 닉슨은 평가가 더 떨어져서 35위로 형편 없는 순위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보다도 놀라운 것은 조지 W. 부시의 순위가 3계단이나 상승해 32위로 닉슨을 능가했다는 것이다. 클린턴이나 아버지 부시도 순위가 떨어졌음을 감안하면 아들 부시의 상승은 눈여겨볼만하다.

조지 W. 부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로 퇴임한 대통령이며 퇴임 직후에는 40위권에 평가가 머물렀다. 하지만 퇴임 이후 그는 계속 재평가받아왔는데, 여러 정책이 실패하긴 했지만 의도가 좋았다는 것과 보수 대통령이면서도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내보냈다는 것이 오늘날 W. 부시의 평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트럼프는 이슬람 입국을 금지시키자고 주장하는데, 부시는 9.11 테러 다음날 이슬람 사원을 찾아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테러리스트와 착한 무슬림을 구분해야한다"라고 말했다. 그 점에서만큼은 부시가 트럼프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겠다.

9.11 테러 직후 2001년 월드리시즈 개막 시구에서 조지 W. 부시 (사진 출처: 9.11 메모리얼)
9.11 테러 직후 2001년 월드리시즈 개막 시구에서 조지 W. 부시 (사진 출처: 9.11 메모리얼)

무엇보다 조지 W. 부시가 역사가나 대중을 가리지 않고 어느정도 "재평가"(나쁘긴 하지만 최악의 수준은 아니다)되고 있는 것은 9.11 테러 직후의 시대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닌가 한다. 9.11 테러 이후에는 민주당원고 공화당원도 없었고 애국자만이 있었다. 부시의 지지율은 90%가 넘었다. 부시가 2001년 월드시리즈 시구를 했을 때 야유하는 관중은 한명도 없었고 모두 성조기를 흔들며 "USA! USA!"를 외쳤다. 해외 언론들은 정신나간 국수주의라고 비판했지만 최소한 9.11 테러로 상처입은 미국인들은 그날만큼은 모두 울었다.

오늘날의 정치 관행을 생각해봤을 때 놀라울정도의 국민 통합이다. 비록 그 통합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중동의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는지를 감안하면, 조지 W. 부시의 재평가는 참으로 미국 중심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국회의사당이 폭도들에게 점거당하고, 전국민이 둘로 갈려져 싸우는 오늘날에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되었던 9.11의 시대가 그리워질법하다.

정상정치에 대한 열망: 오바마 7위가 의미하는 것

마지막으로 대통령 다운 대통령이었는가? 오바마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사진 출처: NPR)
마지막으로 대통령 다운 대통령이었는가? 오바마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사진 출처: NPR)

미국의 통합, 정치다운 정치, 미국다운 미국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잠재적인 심리는 버락 오바마의 높은 순위에서도 엿보인다. 오바마는 이 조사에서 7위를 차지했다. 17위가 아니라 7위이다. 아이젠하워, 매디슨, 케네디, 레이건 위에 오바마가 있고 6위인 트루먼과도 큰 점수차이가 나지 않는다. 친민주당 성향 네티즌들조차 역사학자들이 최근의 정치 환경을 고려해 너무 오바마를 고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확실히 오바마는 7위 수준은 아닐 것이다. 오바마 케어나 도드-프랭크법 등 훌륭한 정책도 많았지만 대부분 공화당 주도의 극우 의회에 부딪혀 개혁이 실패한 경우가 많았고, 공격용 드론으로 중동의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고 줄리안 어산지를 체포하려고 한 제국주의적 외교안보 정책은 변호의 여지가 없다. 50년대 전후 경제 호황을 이끈 아이젠하워나 미국 헌법의 아버지인 제임스 매디슨과 비교해봤을 때 오바마가 특별히 더 잘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사진.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캐롤라인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딸) 전 주일대사,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의 사진.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캐롤라인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딸) 전 주일대사,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

하지만 오바마는 바이든이나 트럼프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최소한 그는 성추행범이 아니고, 의회에서 폭동을 선동하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줄도 알았다. 또 해외 정상의 이름을 잘 기억했고, 80세 노인이 아니었고 웅변가 중의 웅변가였다. 최소한 미국인들은 자신의 지도자가 91건의 혐의로 기소되는 꼴이나 공식 석상에서 넘어지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되었다. 시대를 확장하자면, 전세계의 비난거리가 되었던 W. 부시나, 자신이 여비서와 섹스하지 않았다는걸 기자회견이랍시고 했던 클린턴, 혹은 노환 때문에 일본 총리 앞에서 구토를 하며 쓰러졌던 아버지 부시 같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오바마를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 다웠던 대통령"처럼 보이게 했다.

이제 오바마는 새로운 신화가 되고 있다. "희망"이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나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등의 수식어보다도 이제 그는 정상정치(Normalcy)의 수식어로 더 잘 표현된다. 레이건 이후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지만 유독 그 이후 미국 대통령은 너무 늙거나, 사생활이 엉터리거나, 상식이 부재한 것 등 초강대국의 대통령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전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 점에서 오바마는 대통령다운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 그러한 오바마의 "신사스러움"이 2016년에 트럼프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싶지만서도 말이다.

그 점에서 오바마는 점차 급진적인 진보 사학자들보다는 보수주의자들에게 고평가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역사가들은 그랜트에서 바이든을 보는가

하지만 이 조사에서 그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정치 환경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150년 전의 한 대통령이다. 남북전쟁 총사령관 출신으로 링컨의 후후임 대통령이었던 율리시스 그랜트는 과거 30위권에 머물렀지만 최근들어 순위가 급등하고 있으며, 이번 조사에서는 2015년 대비 9계단 상승한 17위로 올라섰다. 레이건과는 1점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율리시스 S. 그랜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율리시스 S. 그랜트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율리시스 그랜트는 실패한 대통령이다. 그는 남북전쟁의 전장에서는 성공했지만 백악관에서는 실패했다. 그랜트는 링컨 사후 엉망이 된 미국을 물려받아 재건(reconstruction)을 해야하는 임무를 떠안았다. 이는 비참하게 실패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노예 해방만으로 흑인에 대한 백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고, 그랜트의 야심찬 흑인 인권정책은 남부 뿐 아니라 북부에서도 지지를 잃으며 수포로 돌아갔다. 그의 부통령인 스카일러 콜팩스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까지 가장 큰 정치 스캔들로 불린 철도 주식 중개 스캔들("크레디 모빌리에 사건")에 휘말려 정계를 은퇴해야했다. 1873년의 끔찍한 경제 공황은 그랜트를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1876년 대선 때 공화당은 민주당의 맹추격을 허용해야했고, 국민들을 달래기 위해 그랜트와 선을 긋는 한편 그의 정책을 거의 대부분 포기했다.

과거에는 그랜트가 무리하게 흑인 인권정책을 추진했으면서 대외적으로는 경제위기를 초래했고,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측근들의 부정부패를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심지어 그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두는 역사학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것이 너무나 가혹한 평가였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그랜트의 측근들은 분명히 부패했지만, 그랜트 본인은 청렴했다. 뿐만 아니라 그랜트의 반대파였던 민주당은 남부 뿐 아니라 북부에서도 그랜트와는 비교도 안되는 부패 정치를 하고 있었다. 그의 흑인 인권정책은 그 이후 100년의 정책과 비교해보더라도 상식적인 것을 넘어 급진적이기까지 했다. 유일하게 그가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그는 대통령으로서 너무 유약했다는 것이었다.

최근 20년간 그랜트의 평가는 이런 맥락 하에서 극적으로 좋아졌다. 잭슨, 윌슨과는 정 반대로, 그랜트는 "실패한 링컨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고자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그랜트는 링컨과 달리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실현시키기에는 너무 정치인답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군인이었고, 워싱턴 정치에서 일어나는 일의 매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랜트의 사실상 유일한 잘못이었다. 역사학자들은 그동안 그랜트에 대해 지나치게 결과론적으로만 평가했다.

때로는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 최악의 결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너무 많은 것이 일어나고, 너무 많은 당사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너무 많은 것이 순식간에 바뀌는 때에는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기도 한다. 물론 대통령이라는 직책 상 결과론적인 평가가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을 평가하자면,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자 했는지를 평가해야 공정한 평가가 될 것이다. 그 점에서 역사학자들은 그랜트에서 조 바이든을 보는 것이 아닌가?

 

조사는 역사가 525명을 상대로 한 설문에서 154명의 응답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전체적인 결과는 링크(https://www.nytimes.com/2024/02/18/us/politics/biden-trump-presidential-rankings.html)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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