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속도로 가족
한국판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속도로 가족

비트코인 가격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를 비롯, 블랙 스완의 나심 탈레브와 찰리 멍거 워런 버핏 JP모건 제이미 다이먼 등 수많은 경제학자와 투자전문가들이 비트코인은 아무 가치가 없다며 심지어 폰지 사기로 규탄해도 가격은 끝없이 오릅니다. 지금은 투자 반감기라는 역사적 이벤트 때문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채굴량이 딱 100만 개만 남았다며 막차는 떠난다고 외치는 진영(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 마이크로스트래터지 등)은 여전히 투자자들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비트코인이 세상의 모든 돈을 빨아들이는 시점에 하루 세끼를 걱정하는 극한의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넷플릭스애 올라 와 있어 눈길을 끕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넷플릭스에서 개봉돼 아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독립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진지하게 묻습니다. “가난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이 영화는 깡통 전세 사기로 집을 빼앗겨 길거리로 나앉은 4인 가족이 고속도로에서 텐트를 치고 무전취식하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야기 구성과 연출 기법은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떠올리게 하죠.

무능한 가장 정일우는 딸이 초등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인데 학교도 안 보내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며 2만원 만 빌려 달라고 하는 방법(안 통하면 어린 가족과 아내까지 보여주면 결국 인간은 측은지심 때문에 돈을 빌려주게 되어 있습니다.)으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며 화장실에 닦고 텐트에서 자는 생활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단속반에 걸리고 경찰서에 끌려가서 탈출하는 대소동을 일으키죠. 라미란은 정일우의 사기에 속아 2만 원에 측은지심을 더 발휘해 5만 원을 정일우의 딸에게 준 뒤 나중에 이들을 휴게소에서 또 발견해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러다 정일우를 제외한 나머지식구들을 자기 식구처럼 챙기며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죠.

브라운 스톤의 최신작 인생 투자
브라운 스톤의 최신작 인생 투자

 

정일우가 경찰에서 취조를 받을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맞는 말일까요?

우리나라 최고의 재테크 자기계발서 저자인 브라운스톤에 따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연세대 경영대를 나와 증권사 직원을 거친 뒤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경제적 자유를 이룬 그는 지금은 임문학 칸트 연구에 푹 빠져 있습니다. 브라운 스톤은 철저하게 우파죠. 우파는 자립정신과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입장입니다. 한 개인이 만나는 여러 불행 중 가난 역시 우파들은 자립정신의 부족과 잘못된 선택의 누적으로 돌릴 것입니다.

분명 정일우에게는 자립정신도 부족하고 전세 사기에 넘어간 것도 일종의 선택이니 만큼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가난해진 것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일까요?

죄파는 분명 아니라고 말합니다. 일단 사회 내에 이미 불평등이 있었고 그 구조 속에서 태어난 정일우에게는 다른 선택지란 애초부터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원래부터 없다는 주장에는 다소 논란이 있습니다. 많은 재테크 책 저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들은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자청을 비롯 대부분의 자기계발서 저자들은 자신도 흙수저였고 본인의 노력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뤘다는 주장을 합니다. 브라운스톤도 신혼 살림을 보증금 500만 원, 월세 20만 원 짜리 집으로 시작해 이런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말하죠. 자신은 공부가 필요할 때는 열심히 공부를 선택했고 절약과 저축이 필요할 때는 열심히 저축을 선택했으며 애초부터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란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을 할 겁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운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이 만난 초고속 성장에 3저 저금리 저물가 저유가가 없었다면 그는 부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영화에서 정일우는 인서울 대학의 대학생으로 보육원 출신의 아내를 만나 학업도 중퇴하고 이후에 마땅한 직업도 없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애초에 선택지가 없는 삶은 아니었던 거죠,

좌파들은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 겁니다. 누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일우처럼 될 수 있다. 그들을 위해 서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실업 급여도 있고 최저 임금제도 있는 것이며 공공주택이나 공공의대 등이 거론되는 거죠. 당연히 이런 안전망을 위해서는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을 위해서는 국가는 세금 특히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파들은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까요? 바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에 따른 필연적인 정부 실패를 지적할 겁니다. 정일우에게 직장을 제공하고 주택을 무료로 제공한 뒤, 세 번 째 아이를 임신 중인 부인 레드벨벳 슬기에게도 무상의료를 제공해주면 일단 정일우의 비극은 멈추겠지만 경제성장도 같이 멈추고 혁신의 동력도 사라질 거라고 비판할 겁니다.

  • 둘의 논쟁은 끝이 나지 않을 겁니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사회안전망과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마지막 장면, 맥락 없이 라미란의 가족과 정일우의 가족이 함께 우는 장면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극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저도 그 주장에 동의히지만 개인의 선택과 자립정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우파의 주장에도 공감을 합니다. 가난 문제 만큼은 좌파 우파 모두 옳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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