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난다

비가 많이 내린다. 그냥도 쌀쌀한 마음에 찬비까지 보태는 하늘이 꼬집어 주고 싶다. 시험만 끝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지만 지나는 날짜에 조바심만 더해진다. 뭐든 시작에 막연한 기대와 자신감은 끝이 보일 수록 뭔지 모를 불안감에 잘하고 있던 것들도 되돌아보며 손을 떨게 된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큰 가방 메고 나가는 모습에 흐뭇했던 12년 전. 처음으로 큰 교복을 입고 기대감에 부풀어 나서던 6년 전. 이젠 제법 맞는 사이즈로 고르며 멋을 알고 여유있던 3년 전.

시간은 로켓처럼 빠르기만 했을까? 시간은 왜 그리 빠르면서도 거북 보다 느린 것인지. 3년 전 이 쯤에 우리는 어떤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었을까? 그때만 해도 우리 마음은 부자였다. 서울에 살고 있으니 인서울 대학은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줄 알았다. 아는 집 자식들은, 가까운 친인척 조카들은, 오랜 만에 소식을 전한 친한 친구의 친구의 아들 딸은 대학을 모여갔는 지 모두 sky 캐슬에 모여 사는 듯 하다. 어느 새 나도 그 곳 입성이 당연하다고 인심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가득 채워진 곳간에는 이래도저래도 지금은 괜찮은 넉넉한 인심이 풍년이었다. 1학년에서 한 학기가 지날 때마다 아직은 여유가 있어 만회도 당연히 되는 것이라고 즐거워했다. 맘 졸이다 실수하는 것 보다 천천히 하나씩 하자고 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시간이 흘러 고3이 되었고, 더운 여름이 지나 단풍이 드는 가을이 문턱을 넘었다. 이제 기다리던 시간이 코 앞에 다가와 있다. 풍성하던 곳간이 텅비어 구석에 남은 시간이 흩어져 있다. 언제나 가능하고 다시 하면 될거라고 격려하고 다독이며 좋던 인심은 야박해졌다. 지금은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부족하기만 하고 안타까움에 포기하고 싶어진다. 다시 채울 수 없는 곳간을 원망스런 눈길로 자책을 하게 된다.

하루씩 지워져 '0'이 되는 날 아침을 왜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지 잘 모르겠다. 그 좋던 인심과 여유는 모두 어디로 옮겨갔는 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느다. 

이제 10일도 안남은 곳간의 시간은 또 다른 일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을 알려준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여러분의 시간은 매일 24시간 씩 채워지고 있다. 곳간에는 24시간 이라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다. 가득 채우지는 못하지만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춥지 않게 데워줄 수 있다. 아직 남은 시간 만큼 여유를 가지고 잘 마무리 하도록 해 보자.

곳간에서 인심난다. 마음의 부자가 되어 모자란 시간을 아쉽지 않게 잘 꾸려가 보기를 조언한다. 텅 빈 곳간에서는 인심도 여유도 찾기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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