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히 안타깝게도 이 나라에는 삶의 공식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젊은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할 시간도 거의 주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직한다. 게다가 그 직장에 오래 헌신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그렇게 하는 것을 불변의 이념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 때문에 많은 젊은이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는 것에 강박관념 비슷한 불안을 느끼고, 무의식중에 안정을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젊은이들은, 확답을 찾을 여유 없이, 기한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가슴이 짓눌리는 답답한 조직에 헐값으로 자신을 팔아넘긴다. 꼭대기에 있는 타자의 의지를 억지로 강요할 뿐인 집단에 소속돼 보람도 없는 일에 몸을 맡긴다. 약육강식이란 말이 날뛰고 증오와 공포가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무기력하게 떠다닐 수밖에 없는 타인들 속으로 편입되는것이다.
그런 행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불속에 내던져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고, 정신의 생명이 끝났음을 뜻하기도 한다."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中 

고독과 은둔의 작가.  그럼에도 다작가인 마루야마 겐지의 독설이 가장 돋보이는 책입니다.

당신의 아들은 취직하지 않기를 원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취직만이 인생의 목표가 되지 않게 컸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답입니다.

대체로 우리는 고등학교때까지 세상에는 다양한 직종이 있고, 저마다 다른 삶을 살 수 있고 그래서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면 내가 배운 것과는 크게 다르고 배운 것을 써 먹을일이 적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늙어갑니다. 그럼 아주 어릴때부터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면 다른 삶을 살게 될까요?

제가 경험해보지 않은 삶이니 알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직업으로서의 의사를 목표에 두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은 제법 있습니다.

이 학생들에게는 마치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제대로 고민해 보지도 않고, 또 다른 직종은 쳐다봐서도 안 되는 것처럼 살고 있는 데 제가 그 짧은 만남에서 다짜고짜 그 의사,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 근거는 무엇인지 제대로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대체로 전 세계적으로 정치인들의 수준은 시간이 갈 수록 점차 떨어지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평균화가 작용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이제는 어리석은 정치인들의 정체를 알정도로 어중간하게 현명한 국민들이 많아져서는 아닐까요? 

요컨대 몰라서 속지는 않는 데 알아도 할 게 없어서 답답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너무 어리석지는 않지만 어중간하게 알고서 불평을 하는 시민을 만드는 기획을 자본과 매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세습자본주의를 일본은 세습 정치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두 나라는 모두 형식적으로는 정당과 선거구조를 갖춘 민주국가입니다.

그렇지만 국가와 기업의 정체를 꿰뚫어 보는 과격하게 현명한 사람은 서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무정부주의자는 확실히 적습니다

1971년 곡이니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종교, 국가, 소유 우리는 이 세가지 정체를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존 레논의 말과 달리 상상하기 어렵고 할 수 있을 자신도 없습니다.

종교 국가 소유 이 셋으로부터 독립하는 삶은 많이 배우고 똑똑해진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배우고 멍청하게 사는 삶을 많이 봤지 않습니까?

이런 독립은 우선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충분히 곱씹은 후에 그리고 나서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과감한 분투로만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그런  투쟁만이 인간이 살아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정과 사랑 감사가 이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더 굳센 무기일지도 모릅니다.

많은 종교인들은 해당 직업의 특징상 그 쪽을 더 권합니다.

인생따위는 엿이나 먹으라는의 저자 마루야마 겐지는 삶의 무기로 지성을 말합니다.

인간다움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로 지성 쪽에 몸을 두는 것이다. 80쪽

마루야마 겐지보다는 훨씬 한가한 삶이지만 저 또한 매일 읽고 쓰느라고 분주한 삶을 살고 있기는 합니다. 값어치는 적지만 하루 4-5편의 글을 쓰고는 있고  그러기 위해서 마감을 정한 읽기를 하고는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발랄한 삶을 사는 원동력은 쓰기와 읽기입니다. 쓰기 위해 읽으니 쓰기를 앞에 두었습니다

 

이성적으로 살으라고 충고하는 것은 인간 분수껏 살라는 것입니다.

하라리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신체적 특징과 비교해보면 확실하게  분에 넘치는 두뇌를 가졌기에 그 뇌를 써야지 근육이나 발톱을 쓰고 사는 것은 생물계에서 놓고 보면 불리한 선택입니다.

우리의 나약함이 극복되는 것은 의지라고 생각하지만 의지가 있다고 믿는 그 생각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이성때문에 감정과 본능마저 억누르기도 하니 그런 이성의 사용이 지나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인간성이기도 하고 인간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바보라는 말을 왜 쓰겠습니까? 정상성이 부족하다고 보는 것이죠

착한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마 모든 사람의 바램 아닐까요?

 

마루야마 겐지의 몇가지 쓴 소리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남의 손에 급소를 내준 인생은 인생이라 할 수 없다. 100쪽

 한 치 앞은 어둠이고 빛이기도 하다. 어둠에 내던져질지, 빛으로 뛰어들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인생을 타자에게 맡기는 타율적인 삶 속에서는 절대 빛을 얻을 수 없다. 102쪽

  어떻게 살든 본인 멋대로라는, 자유와 함께하는 삶만이 존재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07쪽

 

  불안과 주저와 고뇌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아 있으면서 절대적인 안녕을 얻으려 한다면, 살아 있되 삶을 내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127쪽

 

사회주의 국가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념 때문에 붕괴했다.

자본주의 국가는 현실에 너무 맞추다 보니, 즉 욕망에 너무 충실하다 보니 붕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국가를 대신할, 새로운 국가를 위한 정치사상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국가 시대의 붕괴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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