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훈의 pick

 소설가 이기호는 "소설은 세상을 응전하는 속도가 느리다" 라고 말합니다.

문명사가 도전과 응전이라고 하는 데 더 정확하게는 도발과 응전이겠죠

소설은 많이 맞은 다음에서 시작한다는 이야기인가요?

응전은 돌려세우기도 하고 맞서기도 하고 모른 척하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조창훈이 도발을 하면 송지원이 응전을 하는 모양새도 그렇기도 합니다.

아래부터는 송지원님의 글입니다.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따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저이 있어."(최은영, 밝은밤, p.278-279)

"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순해빠졌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고. 칭찬인줄 알았지. 공부하라면 하고... 난 뭘 주장하고 누구랑 싸우고 뭘 얻어 내고 그런 걸 못했어. 그러다보니 힘이 들어겠지. 아무것도 못 바꾸고 아무것도 안 바뀌니까 도망치고 싶엇겠지. 그냥 도망치면 될 걸 결혼으로 도망친게 실수였어.(권여선, 실버들천만사,p.149)

"다른 사람과 쓸데없는 갈등을 겪지마.그냥 웃어버려.모난돌이 정 맞는거란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며 자랐다. 농담은 내가 생각해 낸 최고의 방어였다.(손보미, 작은 동네,p.10)

몇일전 여기저기서 추천받은 최은영작가의 장편소설 <밝은밤>을 읽었다. 소설은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제 강정기 백정의 딸로 태어나 식민과 전쟁속에 세상 가장 낮은 신분 삶을 살았던 증조할머니, 전쟁과 남성중심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았던 엄마, 그 사이 순응과 감내를 체화한 엄마, 전통사회의 구태가 사라지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의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

 

최은영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엄마나 할머니, 아주 옛날에 이 땅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작가의 바람대로 소설은 시대적 변천사를 온몸으로 담아내는 한국 여성들의 삶을 응시하고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4대에 걸친 여성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사실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이 들때가 있었고, 어떤 장면들은 요즘 읽은 몇편의 여성 작가들의 소설속 등장한 여성들이 외치는 항변의 목소리와 지나치게 흡사하다는 느낌마져 받았다.

현대문학,근래들어 여성작가들의 약진이 이런 비슷비슷한 여성 서사의 소설을 양산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동안 전통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오랜기간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채 소외받고 외면당했던 여성들에 대한 기록이며 그들의 아픔, 상처, 결핍일 것이다. 그래서 여성작가들이 다루는 수많은 여성들, 그저 순응하고 감내하며 버틴 여성들의 이야기는 드디어 소설을 통해 응전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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