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우리 신문을 통해서  강화길작가의 <대불호텔의 유령>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https://www.nextplay.kr/news/articleView.html?idxno=2169

당시 함께 읽은 책 동무들 다수의 냉혹한 비평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설에 대한 호의와 작가에 대한 애틋한 응원의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는데, 작가가 소설을 통해 보여준 사회적 약자들 ,특히 여성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분투와 위악 이외에 부조리한 삶을 살아낼 무기가 없었던 약자들의 결연함에서 존엄성을 지켜내려는 몸부림, '수치스러울 겨를이 없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따라서 필사를 하고 간단한 감상을 달았습니다.

<산책/강화길(사라지는건 여자들 뿐이거든요)>
종숙언니의 아버지는 사는 내내 하는 일마다 족족 다 실패했다. 양계장을 열었더니 전염병이 돌았고, 종이 제작 사업을 벌이자마자 투자금 사기를 당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을 겪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겨우 사십대 초반이었고, 나름대로 의욕이 있었다. 그러니까 역경을 물리쳐야 한다는 책임감, 아내와 세 따을 건사해야 한다는 강한 마음이 있었다. 그는 어른이었다. 온 가족이 얹혀사는 어머니 집, 오래된 한옥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래서 야심차게 다음 사업을 준비했다. 플라스틱 두루마리 휴지걸이를 제작했다. 공공기관과 상가 화장실에 납품할 생각이었다.p.9

남편 때문이군.
영소씨는 곧장 눈치를 챘다. 종숙 언니의 남편은 이 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약을 먹기 전까지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종숙 언니에게 온갖 폭언을 쏟아냈다. 당신은 끔찍한 사람이야.p.20


그해 겨울, 종숙 언니의 남편은 후배의 보증을 섰다.
월급이 차압당한 첫 달, 그는 형을 찾아갔다.
두 번째 달, 둘째 처제를 찾아갔다.
세 번째 달, 친구를 찾아갔다.
네 번째 달, 장모를 찾아갔다. 그렇게 종숙 언니를 제외한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됐다. 장모는 그가 찾아간 이들 중 유일하게 돈을 내주지 않은 사람이었다. 대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사는 곳의 전세금을 빼서 돈을 갚고, 당분간 이 집에 들어와 살라고.p.24-25

어째서, 세월이 아무리 지나고, 이렇게 나이를 먹어도 무감해질 수 없는 걸까. 상처를 받는 일은 끊임없이 생기는 걸까. 종숙 언니는 열심히 살았다. 다르게 살았다. 그러니까, 자식들을 앞에 두고 "네 아버지 때문에 나까지 급이 떨어진다"라고 말하는 삶, 자식보다 자신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한 삶, 그것 때문에 다 썩어빠진 집에서 냄새를 풍기며 늙어가는 삶, 그것과는 다른 삶. 이 년 전, 남편은 종숙언니에게 당신은 장모님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들 재산의 일부를 주식에 투자하고 모두 잃었을 때였다. 그는 그녀에게 치를 떨며 말했다. 당신은 끔찍한 사람이고, 엉망진창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이 ...... 똑같아.p.32

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나 혼자였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있잖아. 응. 나 ....... 너무 미워하지 마. 이건,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누구도...... 아직 대답할 수가 없다. p.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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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단편 <산책>에 대해서 소설집<사라지는건 여자들뿐이거든요>의 소개글인 '여성의 불안을 전면화하는... ' 혹은 '사라지는 여성들에 대한 사라지지 않을 기록' 이라는 문구 때문에 다시 한번 '강화길' 표 여성 서사가 주는 강렬한 환기를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소설<산책>은 대를 이어 상처를 유전하는 여성 서사뿐 아니라 여성 주변의 남성들에게도 눈길이 갔는데, 그것은 이들 관계의 인과성과 유기성때문이었다. 
결국 <산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상처 받고 있었고, 상처 주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상처를 주는 삶을 산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저자가 특정인물 '종숙언니' 가계의 서사를 이야기하면서도 특정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여러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일종의 상처의 익명성과 보편성이 느껴진다.


또한, 강화길 작가가 소설 내내 구현한 상처의 끈적함, 그 질김의 묘사는 마지막 문장에서 매우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관계는 휘발되어도 상처는 끝내 남아 원형의 모습으로 불멸하는 듯 .

 

조창훈의 PICK

그 질척거리는 끈적함이 묘한 것이 그게 내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아서 진저리가 나는 데 종국에는 그게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받아들이는 게 편해진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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