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소설이 그렇지는 않지만 특히 오늘 소개하는 윤성희작가의 문체는 마치 의식의 흐름같은 만연체로 장황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장황함속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묵직하고 만만치 않은 사건과 감정들은 지독하게 압축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옛날 소설이  전개 고조 절정 해갈 같은 요즘 보면 약간 통속적이기까지 한 전형적인 감정의 무브먼트가 있다면 윤 작가의 소설은 다 읽고 나면 감정이 뭉터기로 내 마음에 툭 떨어져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어찌보면 인생은 보고서가  아닌데  보고서처럼 깔끔하게 답이 쥐어지고 그 답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 착각 그래서 일어난 회환,  답답함이 윤작가의  테마인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창작자가  자신이 만든 구조로 전개하며 독자에게 밑밥을 던지고 밀당하듯 독자의 감정을 작가의 손안에 꼭 쥐고  쥐고 흔드는 그런 리드(혹은 카리스마)에 기꺼이 나의 물리적 시간과 온 마음을 내 주는 것도 좋지만 윤성희 작가의 경우처럼  독자를 끌고 가지 않고  자신이 가진것을 숨김없이 쭉 다 펼쳐놓고 독자가 스스로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 보다 당대적인 소설방식이라는 생각입니다. 수더분한 아줌마가, 혹은 옆집 할머니가 하릴없이 늘어놓는 수다처럼 실제인듯 허구같은, 허구인듯 실제같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순진하고 순전하게 써 네려가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김애란 작가는 윤성희작가의 2011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축사에서 윤 작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딘가 틈이 많은 인물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의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때는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 ‘틈’이란 표현처럼, 윤성희 세계의 인물은 환한 빛이라거나 컴컴한 암흑 같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시점에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 ‘나름대로 잘 산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의아해하며 울상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냅니다.  사진은 2019년 한국일보의 등단 20년 기념 인터뷰 사진입니다.
김애란 작가는 윤성희작가의 2011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축사에서 윤 작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딘가 틈이 많은 인물들. 그러나 가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처럼, 문 안쪽의 어둠을 가까스로 밀고 나와, 우리도 미처 몰랐던 마음의 테두리를 보여주고, 어느 때는 어둠을 극장으로 바꿔주기도 하는, 그런 틈을 가진 인물들.” ‘틈’이란 표현처럼, 윤성희 세계의 인물은 환한 빛이라거나 컴컴한 암흑 같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시점에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 ‘나름대로 잘 산 것 같은데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의아해하며 울상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펴냅니다.  사진은 2019년 한국일보의 등단 20년 기념 인터뷰 사진입니다.

윤성희 단편 ‘낮술’,<베개를 베다> 중

엄마는 스물다섯 살에 엄마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먼 친척이 사장으로 있는 작은 건설회사에 사무보조원으로 취직을 해 일 년 육 개월을 일했다. 그리고 스물 둘에 고향에 있는 전무대 회계학과에 입학했다.p.157

그 시절 미희 이모도 툭하면 수업에 빠졌다. 엄마는 친구를 따라 술집에 가서 낮술을 마셨다. 미희 이모의 단골 술집은 학교에서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둘은 항상 그곳까지 걸어갔다.p.158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엄마는 울며 미희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어떡해,라는 말을 오십 번도 넘게 했다. 모든 게 다 술 때문이야, 라는 말은 삼십 번도 넘게 했다. 이년아, 정신 차리고, 남자는 누구야? 미희 이모가 물었다. 호호 아저씨. 엄마가 대답했다. 미희 이모는 깜짝 놀랐다. 아주 나이가 많은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엉ㅆ다. 그런데 그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미희 이모가 엄마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 엄마가 대답했따. 그 남자랑 결혼하고 싶으면 낳는 거고 아니면 나랑 병원에 가는 거야. 잘 생각해봐. 전화를 끊은 미희 이모는 만일을 위해 수술할 병원을 알아두었다. 그리고 미역국 끓이는 법까지 공부해두었다.p.163

엄마는 아빠에게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호호아저씨란 별명은 그냥 생긴 게 아닐거야. 어쨌든 좋은 사람이잖아. 엄마는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별명 때문에 아빠와 엄마가 불과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종종 잊곤 했다. 스물일곱 살. 아빠도 모든게 무서웠다. 아빠는 영업사원이 된 뒤로 늘 가방에 우황청심환을 넣고 다녔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형광등을 켤 때마다 아빠는 생각했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 걸까, 하고 임신한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들은 후 아빠가 제일 먼저 떠올린 말도 그것이었다. 아빠는 우황청심환을 먹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내일 연락할게. 엄마는 섭섭했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난 일주일이나 생각했는데 하루쯤이야. 하지만 아빠는 다음날 연락하지 않았다. 그다음날도. 아무 연락 없이 일주일 이상 무단결근을 하자 회사에서도 퇴직 처리를 했다.p.165

아빠는 당신의 딸이 훗날 교수가 되거나 치과 의사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때까지 뒷바라지할 생각을 하니 치킨을 튀기고 배달하는 일로는 어림없을 것 같았다.p.171

나는 삼수 끝에 대학에 합격했다. 외할머니는 올해도 대학에 떨어지면 그냥 치킨집에서 일이나 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젠 서서히 무릎도 아카오고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나는 취직을 못하면 그때 물려달라고 했다.p.176

술을 마시니 엄마의 잔소리가 늘어났다. 이제 그만, 엄마. 건배나 하자. 내가 잔을 들었다. 엄마도 잔을 들었다. 건배를 하니 쨍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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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원의 에필로그>

그래서 나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건지 모르던 아빠를,
엄마의 임신 얘기에 우황청심환을 먹어야했던 아빠를,
효자가 장래희망이었던 아빠를,
자기를 미워했던 장모를 다정하게 부르던 아빠를, 
지갑에 오랫동안 딸의 올백성적표를 간직하던 아빠를,
정학당한 딸에게 시를 외우게 했던 아빠를,
일자리를 잃은 외할아버지 대신 치킨집을 인수하고 가장이 된 외할머니를,
아빠의 사고후 배달을 안하는 치킨집을 운영한 외할머니를,
이혼과 배달의 선택지에서 배달을 택한 외할아버지를,
아빠없이도 딸을 낳기로 결정한 엄마를,
간암말기의 회사 사장에게 맥주를 사다줄수 있는 엄마를,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무단결석한 딸을,
아빠가 잠을 자던 자리에서 아빠를 생각하며 동요를 부르던 딸을,

그리고 낮술로 시작해서 낮술로 덤덤하게 끝낸 윤성희 작가의 이 이야기를,
나는 또 격하게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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