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요?  라고 하면 많은 작가가 가능하지만 어떻게 이런 삶을 살까요라고 하면 저에게는 박완서 작가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나이 40에 등단을 해서 성공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 아니 늦게 공부할려는 사람들에게는 롤 모델입니다.

박완서가 특별하게 탁월하게 잘 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가는 자신의 경험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글쓰기가 힘들다고 말을 한 바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포인트는 경험이 아니라 경험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박완서 작가의 단편을 소개합니다.

우선 작가의 글을 음미부터 합니다.

마치 겁쟁이가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가볍게 건드린 것 같이 짧게 살짝 울리는 차임벨의 '딩' 소리를 대가족의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흥겨운 소란 속에서 나는 가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 일은 어렵다. 나는 그 일이 끔찍하다. 그 시간의 이 집 안의 시끌시끌함을 무엇에 비길까.p.225

이 집은 내가 살고 있지만 우리 집이 아니고, 이 집이다. 이 집은 친정집이고 나는 출가외인이기 때문이다.p.226

친정살이로 겪어야 할 서러운 일, 야속한 일은 정말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남편을 기다리는 저녁시간이 끔찍했다. 차임벨을 누르는 소리는 식구마다 특색이 있어서 '딩,뎅,동' 소리만 듣고도 누군지를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그것은 아버지으 목소리처럼 느리고 점잖았다. 오빠는 강하게 누루고는 이어서 대문을 발길로 쾅 차는 버릇이 있었다. 동생은 기타를 퉁기듯이 방정맞게 누가 대문을 열어줄 때까지 계속해서 눌러댔고 막냇 동생은 아예 차임벨 같은건 무시하고 직접 대문을 어찌나 몹시 흔달어댜는지 온 집앙니 질겁을 했다.p.227

어머니는 이렇게 우리에게 잘 해준다. 아무것도 불편한 거라곤 없었다. 모든 것은 어머니와 식모애가 알아서 해줘서 저녂때 남편 문 열어주는 것 외에는 할일이 없다. 그런데고 나는 단 하나의 내일인 그 일이 끔찍하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얼마나 끔찍해하는지 내 남편이 알아줬으면 싶다. 점점 불어가는 저축도 남편의 노고의 대가 같지를 않고 내가 그 끔찍한 일을 감당한 결과 같은 생각이 들때가 있고, 그럴 때는 백여만원의 저축이 엄청난 무게로 나를 짓눌러 나는 압사 직전에 이를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p.229-230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남편이 풀퇴근할 때마다 이웃의 수다쟁이 여편네들이 왜 저렇게 신수가 멀쩡해가지고 처가살이를 할까 하며 혀를 끌끌 차고 입을 비죽대는 것을, 또 그 여편네들이 올케를 세상에도 없는 무던한 여자로 나는 그와는 정반대로 얌체로 꼽고 있는 줄도 알고 있었다.p.232

어머니는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돈이 모자라 아파트로 가려는 줄로만 알고 안쓰러워했다. 몇년만 더 아버지 밥을 얻어먹으면 누가 뭐라겠냐고 공연히 죄 없는 올케를 흘겨보고는, 나를 꼬이려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올케와 단짝이 되어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마땅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p.233

그럴 때 나는 이상하게도 내 쌍둥이 아이들이 싫어진다. 그래들이 쌍둥이라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진다. 그러곤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면서 그애들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누가 형이고 누가 아우인지를 못알아보게 되는 것이다.p.243

그런데 내가 문득문득 내 아이들을 구별 못 하는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엄마다운 직관이 흐려질 때, 나는 내 아이들까지 믿을 수 없어진다. 꼭 두놈이 짜고서 아우는 형이라고 형은 아우라고 나를 속여먹는 것 같다. 이런 의심은 불쾌하고 고통스럽다. 자꾸자꾸 속여먹다가 결국 제가 누군지 저희들 스스로도 잊어버리고 말 날이 올것 같다.p.244

나는 아주 멀리서부터 인파 속에서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딴사람들과 달랐다. 그 다른 것이 나로 하여금 그를 최초로 불쌍하게 했다.p.248

그와의 사귐이 깊어짐에 따라 불쌍하드는 느낌도 심화됐다. 그가 남보다 착해 보이는 것, 정직해 보이는 것, 그런 것 때문에도 그가 불쌍했다. 딴 사람들은 갑각류처럼 견고하고 무표정한데 그만이 인간의 가장 싶고 연한 속살, 따뜻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노출시키고 있는 게 불쌍했다. 딴 사람들은 다 무장을 하고 있는데 그만이 무방비상태인 것으로 여겨져 불쌍했다.p.248

 

나는 욕실에 들어가 불을 켠다. 눈이 부시게 환하다. 간음한 여자를 똑똑히 보고 싶다.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에 내가 있다. 생전 아무아소도 얘기해본 적도 관계를 맺어본적도 없는 것같이 절망적인 무구를 풍기는 여자가 거기 있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해맑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나를 처녀처럼 느낀다. 십년 가까운 남의 아내 노릇에 두 아이까지 있고 방금 간음까지 저지른 주제에 나는 나를 처녀처럼 느낀다. 그런 처녀는 끔찍하지만 그렇게 느낀다.p.254-255

이 소설은 1974년 6월 월간 중앙에 실린 단편입니다. 흥미진진한 서사와 역설적 구조,주인공의 내밀한 심리묘사가 어찌나 탁월한지 소설의 출간년도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많은 소설들과 에세이들이 시대적 배경이 상당하게 묘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성을 뛰어넘어 세대불문 독자가 생겨나는 것이 아마 이런 인간의
본성과 욕망이 윤리나 사회통념안에서 느끼는(혹은 충돌하는) 보편적 양가 감정에 관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과 통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설은 결혼하고서도 번듯한 집을 구할 자금을 마련할때까지 친정에서 지내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친정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주인공이  어느날인가 부터 익숙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대가족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은 족쇄가 되고 독립된 고유한 자신과 자기 가족만의 공간과 일상을 가지고 싶은 열망을 느끼는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주인공은 끝내 안전한 울타리였지만 족쇄가 된기도 했던 친정 부모님과 이웃사촌이 철저히 지켜지던 구舊동네를 떠나 자기 가족들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될 아파트로 이사합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눈치와 이웃의 필요 이상의 관심으로 부터 벗어난 현대화되고 세련된 공간인 아파트는 이내 낯선 익명의 공동체와의 표준화, 표준화된 이들과의 차별을 위한 경쟁이라는 또 다른 족쇄를 만드는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고유성을 열망하던 주인공은 이렇게 또다른 차별화를 욕망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습니다.
이 소설의 설정은 오늘날 아파트같은 오프라인의 공간을 넘어 온라인까지 확장된 익명의 공동체와 셀수 없이 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도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을 하는 현대인의 위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위기는 물론 현대 사회,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부터 야기되는 것이지만, 결국 구성원들 스스로의 깨어있음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도 환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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