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책인 탓도 있습니다만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를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 있다"로 바꾸면 우리의 연대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지 않을까에서입니다.

우선 김초엽 작가의 책과는 관계없는 백래쉬를 먼저 풀어보겠습니다.

백래쉬는 수잔 팔루디가 1991년에 쓴  책 『백래쉬』를 통해 퇴행의 형태로 알려집니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닌 것이 미국도  갑작스러운 낙태권 폐기판결이 나오고 이탈리아도 극우정당이 집권하는 등 세상이 단단히 후진을 마음먹은 듯 합니다.

백래쉬는 사실 공학기술용어입니다.

톱니바퀴, 나사 등 맞물리는 기계요소의 진행 방향으로 있는 여유량입니다.

백래시가 너무 적으면 윤활이 불충분하게 되기 쉬워서 치면끼리의 마찰이 커지고 반대로 백래시가 너무 크면 기어의 맞물림이 나빠져 기어가 파손됩니다.

팔루디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고 반발 심지어 반동은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이고 대체로 30%가 임계점입니다.

 인권 옹호가 30%이면  백래쉬 반발이 30%일 때,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선에 왔다갔다하니 많은 사람들이 임계점  일명 '티핑 포인트'라고 인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믿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면, 중간 40%를 포함한 다수의 집단지성은 발전적 방향을 선택할 것이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인권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인간은 고체가 아닙니다. 동물도 아니구요. 그래서 혐오는 인간의 감정이기는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침 전장연의 시위에 대해 지각연대로 대응하자는 느낌이 좋은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회사는 앞으로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각한 시간만큼을 근무시간 기록 플랫폼에 ‘연대’로 표시하고, 직원 당사자의 근무시간으로 인정할 것입니다. 그동안은 기록 없이 인정해왔으나, 앞으로 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 데이터를 근거로 기재부에 항의하겠습니다.”

이제 마리의 춤으로 넘어갑니다.

아래글은 원래 제가 운영하는 독서토론의 논제문이었습니다. 아래 논제문에 있는 질문을 비록 책을 읽지 않았어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앞으로 정상인들에 대한 장애인의 이유있는 반격을 그린 소설 "마리의 춤"을 읽고나시면 별점은 얼마를 주실 것인가요?

저의 별점은 별 한개만을 남겨놓은 네 개입니다. 작가의 미래를 지지하기 위해 별 한 개를 남겨놓은 것입니다.

별점

☆☆☆☆


소라는 수업을 하며 마리가 보여주는 태도에 불편한 감정을 느낍니다. 소라는 마리가 플루이드이나 모그에 대해 언급할 때 어떤 자부심을 담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사실 마리를 둘러싼 대부분이 늘 소라에게 불편한 감정을 가져다 준다”(p.69)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소라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셨나요?
 

난 루트칩에 적응 못했어.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맞아요.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마리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만이 적응에 성공했죠.”

그 말을 할 때 나는 마리가 어떤 자부심을 담아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자부심은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마리의 그런 태도만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마리를 둘러싼 대부분이 늘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마리를 볼 때마다 나는 명확히 대답하기 힘든, 그러나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생각했다. 왜 마리는 자신이 감상할 수 없는 형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혹시 아름다움에 대한 농담이나 기만 비슷한 일이 아닐까. 마리가 모그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내비치는 자긍심은 무엇일까.(p.69)

 

마리는 소라에게 중학생 때 모그 교육원을 홍보하는 자선행사”(p.78)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합니다. 당시 억지로 동원된 모그 아이들은 연습도 대충하고 보란 듯이 엉망으로 공연을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고 모그들을 껴안아 주었고 모그아이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마리는 그날 사람들은 모그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p.79)는 것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마리의 이러한 경험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중학생 때 합창단에 동원됐거든요. 모그 교육원을 홍보하는 자선 행사에서 우리에게 공연을 하라고 했죠. 기분이 나빴지만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연습을 대충했어요. 보란 듯이 가가도 다 틀리고 엉망징창으로 무대를 마쳤어요. 그런데 막상 반응이 어땠는지 알아요?” “자선 행사에 온 사람들이 울기 시작하는거예요.” “관객들이 훌쩍이고, 달려 나와 우리를 껴안았어요. 강당의 공기가 습해지는 것에 우리는 어리둥절해졌고요.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정말 누가 들어도 엉망징창인 공연을 했는데. 우리는 열다섯 살이었고, 열다섯 살은 어린 나이지만 때에 따라 탁월함을 기대받기도 하는 나이잖아요. 그날 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p.78-79)

 

페스티벌에서 있었던 마리의 퍼포먼스는 수많은 논쟁”(p.93)을 남깁니다. 일시적이지만 시지각 이상증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의 일부는 모그들을 이전보다 더 증오하게 되었고, 또 어떤 일부의 사람들은 이제야 모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p.94)고 말합니다. “모그들 사이에서도 마리의 퍼포먼스에 관한 의견은 각자 달랐습니다.”(p.96) 그러나 마리는 과격한 방식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것 이라며 계획을 실행한 것인데요. 여러분은 마리의 이런 결정을 어떻게 보셨나요?

왜 그렇게 과격한 방식을 고집하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아무도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일방적으로 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지금까지 이 세계에 맞추려고 노력한 건 우리 모그들이에요. 당신들이 아니고요.”(p.90)

 

소라는 마리의 무대를 지켜 본 또 다른 익명의 모그로부터 그날 퍼포먼스에서 보였던 마리의 춤”(p.97)에 대해 듣습니다. 그는 마리가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진심으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하면서 당신이 와 줬다면 마리가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라는 여전히 목각인형처럼 춤을 출 마리를 떠올리며 보여지는 것은 이제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p.98)는 말을 하는데요. 여러분은 이런 소라의 생각을 어떻게 보셨나요?

무대에서 보았던 것이 단지 사건의 전초단계만은 아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래도 당신이 와줬다면 마리는 기뻐했을 텐데요.” 그런 말로 운을 떼면서 그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마리는 그 무대 위에서 정말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음악에 맞추어 무대의 끝에서 끝으로 뛰고, 구르고, 손끝을 접으며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그 순간 움직임은 마리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인 것 같았다고. 그게 마리의 변덕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아 자리를 떠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었는지, 그것도 아닌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춤의 어떤 부분들은 플루이드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마리는 진심으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고 그는 말했다.(..) 창밖의 해가 천천히 기울며 다른 색의 빛줄기를 탁자위로 비추었다. 빛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일까? 문득 나는, 어딘가에서 춤을 추고 있을 마리를 생각했다. 마리는 여전히 목각인형처럼 춤을 출 것이다. 동작들은 허공에 계산된 궤적만을 긋고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움은 표면 아래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것은 이제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p.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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