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다룬 독창적인 애니메이션이  <세이버 마리오넷 J> 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그동안 정을 쌓은 세이버 마리오넷 (일종의 AI)을 위해 인간 여성의 구출을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본 적 없는 진짜’와 ‘진짜로 보이는 가짜’ 중 후자를 택한 셈인 것이지요.

 

----------------------------------

작중 배경은 외계 행성인 테라2로 남자 밖에 없는 행성이다. 22세기말 지구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이민선단에서 이 행성에 불시착하여 살아남은 단 6명뿐인 생존자는 모두 남자였는데, 여자가 없었기에 인류의 존속을 위하여 생존자 6명(도쿠가와 이에야스, 게르하르트 폰 파우스트, 알렉산드르 키신, 조이 휴릭, 왕용평(王庸平), 빌레이 메디치)은 각자 자신의 체세포 클론을 만들어 후손을 창조했으며 후손들이 각자 선조의 모국을 본딴 도시국가를 만들어 발전하였다. 

그리고 사라진 여성의 역할을 대신하여 여성형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졌는데, 이들을 마리오넷이라 부른다. 마리오넷은 사실 초반에는 여성을 잊지 않기 위해 제작되었지만 후에 개척 효율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력 제공 역할로 전환되어 기계, 도구로 취급되었다. 용도에 따라 가사 등 일반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범용형, 생리적인 욕구나 시각적인 만족을 제공할 겸 애완용인 섹사돌즈(애니판의 세이버 돌즈), 전투에 쓰이는 개체들인 세이버 마리오넷이 있다. 일반적인 세이버 마리오넷은 군사, 경찰, 경호 용도로 쓰이며 감정이 없는 전투기계이지만 소녀회로(오토메 카이로)를 가진 특수한 마리오넷들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한 남성을 향해 연심을 품고 충성을 다하게 된다. 주역급과 주요 악역급 마리오넷들이 이 회로를 보유하고 있다.
‐------------------------------------

송지원 님은 이 애니를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의 붕괴'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지원님의 글입니다.

벤야민은 기술 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에 예술작품은 더이상 '진본'으로서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인간의 수많은 기능이 AI로 대체되는 시대에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로서 존재하게 될까? 어쩌면 세이버 마리오넷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의 극한이 모두 대체 가능해진 시대에 인간은 과연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이 느껴진다.
다시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이야기를 풀어보면,
사실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아무리 '진본'의 '아우라'를 언급하며 훼손될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부각하여도 예술 작품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압도적인 우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진본'이 가지고 있는 가치보다 조금 떨어지더라도 복제본을 통해 충분히 만족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진본, 진품에 대한 소유(욕구)가 아닌 감상의 측면이라는 조건 하에서는, 사실 심지어 현대는 복사본으로도 소유(요구)를 어느정도 만족시키기까지 한다.)
이러한 예술(품)의 진본에 대한 대체 가능한 경험을 인간에게 까지 확장한다면 너무 과한 비약일까?  인간이 나와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생긴다면, 더군다나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내 마음과 같지 않은 여러 불편함이나 다른 인간 존재의 예측불가능한 행동변수 마저 최소화한 존재라면, 과연 인간은 그런 존재를 인간과 대체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 대신 세이버 마리오넷의 존재를 선택하는 것에 비판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에서의 비판일까? 인간과 기계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기준? 본질적 존재와 비본질적 존재에 대한 철학적 기준? 휴머니즘의 기준?
인간이 나와 다른 인간을 마주하는 과정은 늘 객체화, 타자화의 과정이 아니었던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저는 제목과 같이 잔치국수와 라면 으로 쉽게 등치화하고 싶습니다.

잔치국수는  분식집에서도 팔지만 결혼식 생일 환간잔치등의 행사에도 사용됩니다. 이런 잔치에 등장하는 이유는  국수 가락처럼 오래 잘 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지금도 분식집에서 팔지만 라면의 위상과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런데 이 또한 변종입니다. 한국에서 '라면'은 한 끼를 가볍게 대체하는 인스턴트 이지만 일본에서 라멘은 국수처럼 정식의 면 요리입니다.

귤화위지 귤이 넘어와 탱자가 된 것인데 그래도 매력이 있습니다.

매력은 때로는 올바름이나 좋음과는 다르게 다가오고 완벽함이나 올바름과는 동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서두에서 ‘본 적 없는 진짜’와 ‘진짜로 보이는 가짜’ 중의 선택이라고 했는 데 우리가 지금 어떻게 하는 지에 따라 다음 세대는 진짜를 본 적 없게 되기도 합니다.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도 그렇겠지요!

 

 

저작권자 © 괜찮은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