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우리나라를 보면서 혹 이것이 본연의 성질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해방때도 이런 모습이었으니까요!

괴테는 자신의 문학작품에서 빛과 어둠을 반대가 아니라 자연의 통합적인 측면으로 바라 보았습니다.

이제는 읽는 사람이 적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괴테는  주인공 베르테르의 양극성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베르테르는 극심한 기쁨과 절망, 사랑과 증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고통받습니다.

베르테르 증후군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센세이션한 소설로 18세기의 유럽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화제성은 이 책이 연애소설이지만 동시에 사회비판 소설로 주인공 베르테르(베르터)도 낭만주의자에서 사회주의자로까지 극과 극의 해석이 가능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성격 정체성 지향점이 양극적 인 것이지요

이 소설은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떠나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소설의 도입부 고향으로부터 떠나온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Wie froh bin ich, dass ich weg bin!“ 라는 문장은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역설적으로 얼마나 후회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모순과 역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성(혹은 냉정)과 열정(혹은 분노나 광기) 사이를 떠도는 방랑자 베르테르는 어느 곳에서도 안정할 수 없는 인물이 됩니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삶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소박한 민중의 삶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베르테르는 보리수가 드리워진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즐기는 그런 사람입니다.

1770년대에도 브라만 좌파는 있었던 것입니다.

강남 좌파라는 말을 소멸시킨 브라만 좌파는 토마 피케티의 명저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나옵니다. 그는 이 책에서 프랑스 브라만 좌파들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 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으로 그들은 유리한 사회적 지위를 통해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익이 되는 교육 제도를 관철시켰다고 비판합니다.

브라만 좌파는 강남좌파보다 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개념입니다. 브라만에 속하면서도 좌파인 사람들,  기득권의 이익보다는 약자의 이익을 옹호하며 당연히 공동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말하지만 자기표현이나 포장에 그칩니다.

지난 총선직전의 화두였는 데 이번 총선 직전의 화두가 되기도 하는 현상은 이 스윙보터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서울대 의대 교수 전원사직 결정에 대한 몇 개의 댓글을 보았습니다

우선 증오
서울대 병원 압수수색해라 교수들 리베이트 받아 먹은거 있는지 연구비 개인적으로 유용한거 있는지 세금 탈루한거 있는지 자녀들 의대입학 특혜받은거 있는지 탈탈 털어라

그리고 실망
그럼 교수들은 어쩌라는 거냐? 이미 번 아웃은 오고도 남았고, 학생도 전공의도 없고, 의료사고 위험은 커지고... 모든 일을 순리로 해결해야지. 지금 정부처럼 무대뽀로 일방적으로 증원발표하고 안 받아드리면 처벌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데 무슨 해결이 될까? 

이성
서울대 교수들이 전원 사직을 한다고 하면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서울대 교수는 돈버는 직업이 아니잖아 우리나라 최고 의사들이고 명예직인데 명분이 있으니까 하는거 아니겠어? 그 명분이 뭔지 한번 찾아보고 확인해보자 

그리고 또 다른 생각
저들에게도 잘못이있는건 맞지만..사태를 수습못하고 이따위로 상태까지 만든 정부가 무능한거지

그리고 또 다른 생각
의사가 환자를 버리신다. 왜, 무엇때문에, 환자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해서인가요. 이유여하 막론하고 환자버리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라 저급한 의료기술자라고 해야 겠지요.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지요. 선복귀 후협상해야 하지요

우리 시민은 즐거움보다는 편안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 위협에서 보호받고 싶은 것이 1순위 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가 ‘중간공간’에 위치하면서 양극 사이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을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제가 뽑은 가장 명문장

 그는 롯데를 향한 열렬한 사랑과 동시에 그녀를 가질 수 없는 절망감에 시달다.

로쟈라는 필명으로도 널리 알려진 서평가 이현우 선생님의 우린 어떤 베르테르를 읽어왔나에서 저자의 변화를 초판과 개정판으로 구분해서 설명합니다.

1774년에 초판이 나왔고 87년에 개정판이 나옵니다.

개정판을 낼 무렵의 괴테(1749~1832)는 이미 30대 후반으로, 1786년부터 1788년 사이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고전주의자로 변모한 때이다. 초판본을 내면서 ‘질풍노도' 운동의 대표자로 떠오르게 되는 젊은 날의 괴테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 괴테였고  개정판 <베르테르>가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판본이다.

의대 증원과 관련된 저의 과거의 기사들을 보면 필요하고 시급하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는 증원의 실천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과거 대표적 열혈 의대증원론자 김윤 교수의 글을 인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분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2천명은 이루면  안 되는 숫자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누구나 말 할 권리는 있고 정부는 들어야 할 의무가 있고 우리 모두가 타인에게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정책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선언할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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