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닭강정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이 연출한 닭강정

315일 개봉된 이병헌 감독의 닭강정에 대해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신개념 코미디라는 말에 열광하는 이도 있는 반면 어이가 없다, 유치하다라는 평가 또한 있습니다. 어쩌면 후자가 좀 더 많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닭강정으로 변한다는 설정은 원작 웹툰에서 따온 거지만 그게 스마트폰 만화로 볼 때와 눈앞에서 사실적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로 볼 때는 사실 전혀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작이 워낙 독특한 그림체에 반응이 폭발적이었으니 상대적으로 영상화하는 과정에서 상상력과 CG가 다소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웃는 그런 드라마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 거리가 분명 존재했죠.

1) 인간은 위험을 만나야 진면모가 드러난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위험을 만납니다. 어떨 때는 데인저러스하고 어떤 때는 리스키하기도 하죠. 내 딸이 살아서 닭강정이 된다는 건 리스크라기보다는 데인저, 데인저라기보다는 디재스터 같기는 한데, 이 확률적으로 아주 희귀한 상황에서 사장과 인턴 사원이 벌이는 좌충우돌 코미디가 이 시리즈의 핵심이죠. 리스크와 데인저를 조금 더 쉽게 비유적으로 설명드리자면 날카로운 칼, 높은 건물 옥상 등은 데인저죠.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리스크는 자동차 사고 질병 감염 투자 손실 등 주로 눈에 보이지 않죠. 앞에 데인저는 내가 피하면 됩니다. 그런데 리스크는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확률적으로만 존재하니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단은 영화 속 위험을 리스크로 규정하고 이야기를 풀아가겠습니다.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합니다. 주인공인 류승룡은 딸이 영원히 닭 강정이 될 수 있다는 리스크와 후반부에 비밀이 밝혀지면서 다른 행성으로 가서 인간이 되고 돌아오면 딸 김유정에게는 하루지만 자신에게는 50년이 걸린다는 리스크가 있습니다. 라스크 헤징 차원에서 밥벌이 수단인 모든기계 회사도 직원에게 넘기고 산으로 들어가 스트레스 안 받고 운동만 합니다. 인턴 사원으로 김유정을 짝 사랑하는 안재홍도 같은 리스크에 처합니다. 리스크가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리스트를 대할 때 그 사람의 진면모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려는 류승룡이 어떤 리스크도 지겠다고 달려드는 건 이해가 됩니다.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김유정을 짝사랑하는 안재홍도 영화에서 온갖 리스크를 지려고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리스크 테이킹을 하려고 하는 것이죠. 말도 안 되는 기계를 개발하려고 하는 과학자나 그 과학자의 조카 그리고 그 기계의 소유주인 외계인들까지 모두가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맞섭니다. 그냥 웃기면 그만인 영화에서 배우들은 웃기기 위한 마련된 애드립을 치며 드라마를 그냥 웃기게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과 삶에서 만날 리스크에 대한 등장인물의 태도는 의외로 진지합니다.

2) 위험에 대한 태도 리스크테이킹이냐 리스크회피냐?

그런데 실제 리스크를 만나는 인간들은 리스크 테이킹보다는 리스크 회피로 대응합니다. 리스크 회피는 안전 혹은 안정을 지향하는 자세입니다. 엔비디아 주식 투자 비트코인 투자는 전형적인 리스크 테이킹의 자세고 자녀를 의대에 보내 평생 안정적인 전문직을 얻겠다는 학부모들의 자세는 전형적인 리스크 회피의 자세입니다. 사실 리스크 회피를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비관론자들입니다. 낙관론자들은 주식이 떨어질 때 기회라고 생각하고 떨줍을 하지만 비관론자들은 아에 주식은 패가망신이라고 생각하고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죠.

세상은 리스크 회피를 하려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 영화에서는 아무도 리스크 푀피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 영화가 너무나 이상한 겁니다. 사람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움직이죠.

3) 리스크 자체를 없애버린 리셋의 의미

드라마의 마지막은 웹툰과 조금 다릅니다. 웹툰에서는 우주로 간 김유정이 특수 선글라스를 끼고 타임 슬립을 통해 아버지와 재회하는데 드라마는 선택지를 김유정이 아니라 안재홍에게 주어집니다. 안재홍은 BTS 못지않게 성공한 세계적인 아티스트입니다. 그 동력은 50년을 버티면 사랑하는 김유정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었죠.

그런데 앞으로 200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안재홍은 다른 선택지를 고민합니다. 자신의 모든 기억을 다 지우고 완전히 리셋된 세상에 즉 드라마의 처음으로 다시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내가 이룬 것을 다 잃는 것인데(물론 젊음은 얻겠지만)그 선택은 쉬웠을까요?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안재홍은 0.1초의 고민도 없이 버튼을 누릅니다. 그건 사랑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안재홍은 사실 가장 중요한 걸 간직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는 열렬히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여인을 수시로 볼 수 있었으니까요. 어찌 보면 그 이익을 지금처럼 간절하게 기다리는 고통보다 크다고 생각해서 리셋을 선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닭강정은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싸구려 유머로 점철된 그저 그런 드라마일 수도 있겠지만 리렛을 주기적으로 해서 리스크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면 이라는 인간의 심리를 잘 드러낸 점에서 분명 건질 게 있습니다. 리스크를 대할 때 리셋 버튼이 추가된다고 생각하면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 조금은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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