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시리즈 '선산'
넷플릭스가 선보인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시리즈 '선산'

조정래 작가는 33년생이니까 90이 넘었습니다. 이 나이에도 작품을 쓴다는 게 신기할 정도인데 그가 최근에 낸 작품들은 예전 전성기 때 그 작품들은 물론 아닙니다. 사교육 문제, 돈의 숭배 문제들을 비판하지만 사실 구체적으로 작품을 풀어가는 방법론은 그전에 그가 발로 뛰면서 수집했던 생생한 자료라기보다는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두 사람의 대회체로 바꾼 정도죠. ‘항금종이는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을 떠올리게 하는 문제의식으로 시작했지만 돈에 대한 여러 군상들의 여러 목소리를 보여주었을 뿐 태백산맥같은 수준의 대작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재벌이 대통령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는 너희는 5년이면 끝나지만 우리는 영원하다고 말한다는 등 돈과 권력에 대한 지극히 평균적인 일반론이 책에는 담겨 있죠. 그중에서 도입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조상이 물려 준 선산과 이를 두고 새로 알게 된 이복형제와 갈등을 벌이는 우리 주위에서 정말 흔하데 보고 듣는 그런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신작 선산을 보며 마침 비슷한 시기에 읽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이 떠오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연상이었죠. 물론 연감독이 기획하고 각본을 쓰고 촬영까지 다 마쳤을 때까지도 조작가의 신작은 몰랐을 겁니다. 선산이란 단어가 영어에 딱 떨어지는 표현이 없어 물려주다는 뜻의 Bequeathed가 된 건 선산이야말로 정말 한국적이기 때문입니다 태백산맥에도 이념을 초월한 땅에 대한 힌국민의 집념적 사랑이 드러나지만 드라마 선산은 존재자체를 몰랐던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선산의 상속자로 자신이 지목되고 자신도 몰랐던 이복 동생의 존재를 알게 되며서 겪는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섞인 작품이죠. 그런데 결말이 국내 시청자 입장에서 지극히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습니다. 스포일을 최대한 자체하며 저는 조정래 작가의 황금종이와 엮어서 세 가지 쟁점을 뽑아 보았습니다.

왜 한국인이면 누구나 조상이 물려준 선산을 꿈꿀까?

내 꿈은 재벌 2세인데 부모님이 노력을 안 하셔.

너의 꿈이 뭐니?

돈 많은 백수요. 아니면 건물주요.

두 농담 같은 진담 속에는 공통점이 있지요. 즉 부는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 받는 거라는 인식입니다.

한국인들은 노동으로 얻은 부에 더 이상 관심이 없습니다. 비트토인으로 일확천금을 얻든지, 선물 옵션 투자에서 반대 방향으로 50 배 레버리지를 쓰고 갑자기 생긴 부채 때문에 한강을 가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비트코인이나 선물옵션이나 투자를 잘못했을 때 목숨이라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는 게 무서워 대신 바라는 게 조상이 물려 준 선산이죠. 황금종이의 시작과 연상호 감독이 그리는 돈에 환장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실태는 선산에 대한 한국인의 낭만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국토의 70%가 산이라 조상이 물려주는 땅은 맹지나 다름없는 선산으로 묘자리로 쓸 수밖에 없는데 연상호 감독은 이 선산이 여러 곳이 섞이면 대한민국의 부의 상징인 골프장으로 재탄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살인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고발하고 있죠. 일확천금을 꿈꾸고 노동으로 돈 번을 비하하는 세상은 솔직히 희망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연상호 감독이 지옥 이야기가 리얼리즘에 가까운 스릴러물을 냈지만 이전 작품들과 이 작품 그리고 황금종이의 주인공들 모두 돈에 환장해 소송은 물론 사람 목숨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공통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돈 때문에 아픈 사회 슬픈 사회가 되어 버렸다는 거죠.

돈 없이 품격 유지 할 수 없다 좌도 우도 모두 공감하는 명제

조정래 작가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프라이버시 문제로 그가 사는 아파트 그가 타는 자동차 등을 언급하려고 하지 않지만 소위 강남 좌파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언행 불일치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그들이 위선으로 공격받는 명분은 스스로 제공하기 있기는 하지만 싫다고 해서 그들이 하는 옳은 말까지 싫어할 이유는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조정래 작가의 신작 '황금종이'
조정래 작가의 신작 '황금종이'

 

황금종이는 강남좌파의 이중성에 대한 내면의 반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거죠. 돈 없이 품격 유지할 수 없는 한국 사회에서 좌든 우든 모두에게 돈은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사실 인간의 존엄성도 엄밀히 말하면 돈이 만들어내는 깁니다. 돈 있는 자가 존엄성을 말할 수 있는 사치가 있는 것이지 돈이 없으면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는 걸 좌도 알고 우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원인은 아는데 해결팩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연상호 감독은 갑자기 생긴 불로자산(선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품격을 잃고 동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해결책을 나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그 해결책이 한국인이면 한국인 답게 돈보다 가족을 언제나 앞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식상한 내용이라 후반부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선산을 둘러싼 죽음은 우리가 돈 없는 삶은 곧 죽음임을 암시한다

황금종이에서는 살인 사건까지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산에서는 살인과 살인 그리고 살인을 마무리하는 가족애로 끝납니다. 그런데 조정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단언합니다. 돈 없는 삶은 그 종착지가 정해져 있다. 그것은 바로 죽임이라는 거죠. 사실 비판의 강도 면에서 사교육을 망국의 주범으로 비판했던 전 작에 비해 조 작가의 황금종이는 애매한 편입니다. 돈은 한국을 넘어 인류의 역사 그 자체를 지배해 온 역사적 절대 권력이기 때문에 어떤 수단으로든 극복할 수 없다는 거죠. 돈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좌도 우도 아니고 인간인 이상 불가능하다는 비관론을 펴고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도 돈에서 나는 썩은 내는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죠. 대학교수든 시간강사든 바람피우는 남편이든 심부름센터 사장이든 의사 사위를 보려고 반 사기로 노래방 건물을 주인공에게 넘기려는 술집 사장든 경찰 박희순과 그의 후배 경찰들을 제외하면 한 마디로 돈이 있는 곳에 썩은 내가 풍긴다는 그런 이야기를 연 감독은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돈을 둘러 싼 아귀다툼만 보여주지 범죄까지 치닫지는 않습니다만 돈의 종착지 즉 돈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적 본능은 생존이 아닌 공멸을 뜻한다눈 연감독의 주장에 대해서 동의할 수도 있겠습니다.

90을 넘은 대문호도 못 찾은 질문의 정답 돈을 숭배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다시 가족이다를 외친다면 글쎄요, 그 가족보다 위에 있는 것이 돈이라고 말하는 조정래 작가의 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게 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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